<2022년 11월과 코로나>
코로나19에 감염됐다. 20년도쯤 유행을 시작한 코로나19는 적어도 내 주변에선 걸리지 않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그런데 내가 너무 집에만 있던 덕분이었을까, 나는 코로나는 둘째치고 흔하디 흔한 환절기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다. 일간 확진자 수가 십만 단위를 넘어섰을 때쯤에는 우리 가족이 확진자들 틈에서 밥을 먹어도 아무도 걸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유행이 거의 지나갔다고 말하는 11월 초, 아버지를 시작으로 뜬금없이 우리 가족이 전부 확진됐다.
20년도에 나는 공익근무요원이었다. 장애인 재활작업장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그때는 일간 확진자가 10명 남짓했던 것 같다.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시설이 감염 취약 시설이라면서, 일간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가는 순간 휴관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나는 으레 군인 신분의 철없는 청년들이 그렇듯, 확진자가 늘어나서 작업장이 휴관하기를 내심 바라곤 했다.
그러나 휴관 같은 건 없었고. 마스크를 쓴 채로 공익 생활은 계속됐다. 사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이런저런 이유로 훨씬 편했다. 작업장의 이용인들이 가끔 코로나에 감염되거나,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종종 나오지 않곤 했다. PCR 검사도 처음에는 눈물 콧물 다 빼면서 콜록거렸지만 (첫 검사를 훈련소에서 받았기 때문에 거칠게 쑤셔진 게 컸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21년도 들어서면서 코로나는 순식간에 대유행했고, 나는 주변 모두가 끔뻑끔뻑 사라지는 와중에도 멀쩡하게 자리를 지켰다. 영화에서 단 한 발의 총알도 맞지 않는 주인공이 된 느낌이랄까... 내가 무슨 슈퍼 면역자, 항체 보유자 그런 건 줄 알았다. 확진자와 같이 밥을 먹고도 감염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을 때... 나는 확신에 차있었다. 오, 난 좀비에게 물려도 좀비가 되지 않는 면역자구나. 재밌는데?
그런데 그 모든 게 운이었던 거다. 아님 내 면역력이 상당히 강했거나... 11월 직전, 나는 확실히 약해져 있었다. 난 살은 쪘을지언정 건강하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잠을 자도 피곤하고 다크서클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입병도 나고 입술도 부르트고, 머리카락도 왠지 자꾸 빠지는 것 같고(?)... 분명 쉬고 있는데도 쉬고 싶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목에 생선 가시 같은 게 걸린 것처럼 따끔거렸다. 내가 입을 벌리고 잤나, 방이 좀 건조한 편이라 자는 동안 목이 말랐나 보다 싶었다. 물을 마시고 나서 낮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목이 아프지도 않고 어디 불편하지도 않고... 그러다가 저녁 무렵에 갑자기 몸이 이상해졌다. 가끔 어디가 아픈지 구체적인 설명은 못하겠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어지러우면서 분명 아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느낌이었다. 불쾌감이 점점 뚜렷해지자 아침에 목이 아팠었다는 사실이 생각나면서, 감기겠구나 생각했다. 설마 코로나일까 하는 마음은 분명 있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밖에 나돌아 다니지도 않고 만나는 사람도 없으니까... 열을 쟀는데 37.9도였다. 이땐 직감이 됐다. 다음 날 검사를 받았고 깔끔하게(?) 식구들이 전부 확진됐다.
어릴 때는 감기에 자주 걸렸었는데, 근래에는 감기라는 걸 걸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흙바닥을 뒹굴면서 놀았으니까 위생적으로 좋은 상태는 아니었을 거다. 흙 파고 놀고 축구하고 콧물 흐르면 대충 비벼 닦고... 매일같이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상태였겠지. (왜 그랬는지 당최 모르겠지만 난 씻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던 것 같다... 씻고 나오면 다시 빡빡 씻고 나오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으니까...) 근래에는 꾀병으로 아프려면 아팠지, 진짜로 아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는 진짜로 아팠다. 내가 기억하는 인생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면 콧김이 너무 차갑고 내쉬면 너무 뜨거워서, 콧구멍에 담금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 년 365일 중에 330일은 덥다고 생각할 정도로 더위를 잘 타는데, 밤마다 너무나도 추웠다. 집에서 내 옷차림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늘 얇은 잠옷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꺼내지도 않던 담요를 몸에 두르고 이불을 두 겹씩 덮고 누웠다. 이불이 무겁게 느껴지고 침대에서 옴짝달싹 못했다. 온몸을 싸매고 있으면 금방 더워져서 온몸이 땀으로 축축이 젖었고, 몸이 젖으니까 이불 밖은 더 추웠다.
밥도 잘 못 먹었다. 먹는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낙인데 처음엔 김밥 한 줄 먹지 못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서 밥이라도 잘 먹자고 했는데, 치킨을 시켜도 한 조각을 겨우 삼키는 수준이었다. 입맛이 전혀 돌지 않으니까 착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코로나 다이어트 미쳤다'고 생각했다. 미각이나 후각이 사라진 사람들도 있다는데, 나는 그러지 않아 다행이었지. 미각을 느끼지 못하는 내 인생은 의미가 없다... 여튼 감염되고 3일 차까지 밥은커녕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3일 차 이후부터는 대부분 호전된다는 게 코로나 확진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나는 4일 차부터 다른 증상이 나타났다. 3일 차까지는 어지러움, 인후통, 오한이 극심한 수준이었다면 4일 차부터는 기침, 근육통이 주요 증상이 되었다. 특히 기침을 막을 수가 없었다. 기침을 막기 위해 물을 마시는 순간에도 기침이 나오는 지경이었다. 과장을 보태어 내 인생 전체의 기침 횟수와 코로나 감염 이후의 기침 횟수를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수준이었다. 그래도 4일 차부터는 식성이 원래대로 돌아와서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코로나 다이어트는 무슨 코로나 벌크업이었다. 먹고 약 먹고 자고, 일어나면 또 먹고, 기침하고 부어서 나는 더 둥그레졌다.
밤이 문제였다. 밤에 아파서 잠을 못 잤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오후 8시 정도 이후가 되면 기침이 더 심하게 나오고 숨도 쉬기 어려웠다. 누가 온몸을 우락부락한 손으로 마구 주무르는 것 같았다. (안마를 받았다는 게 아니라... 아프게 시달렸다고) 그렇게 밤새 고생하니 주간에 내내 무기력했다. 5일 차가 지나 격리가 끝났는데 좀체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데 크게 지장은 없었지만, 기침은 멈추지 않고... 어지럽고 온몸이 쑤셨다.
증상은 2주 차까지 이어진 것 같다. 병원, 약국을 돌아다니며 기침을 멈추는 약을 구했다. 어느 약국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약사가 자기도 똑같은 증상을 겪었다고 본인에게 효과적이었던 약을 주겠다고 했다. 일주일치를 받았는데 약이 무슨 3만 원 가까이 됐다. 그 약효가 좋았던 건지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사라진 건지 모르겠지만 감염 3주 차가 지나니, 서서히 기침이 멎었다. 기침이 멈추지 않을 때마다 꿀차를 타서 마셨는데, 300g 가까이 있던 꿀을 다 먹었으니 새삼 실감이 났다.
그러고 11월을 돌아보니 투병했던 기억밖에 없었다. 글도 그림도 더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래서 더 이것저것 벌려놓았는데 내내 쓰러져 자거나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다. 어릴 때는 아파서 학교를 못 가면 그저 해방된 느낌에 신났었는데, 다 큰 뒤에 아파서 쉬니까 불안하고 조급해진다. 살면서 건강이 최고라는 말들을 자주 듣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이 말하는 "건강이 최고"와 아픈 사람이 말하는 "건강이 최고"는 같은 말임에도 무게감이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모두가 가볍게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그리 무겁지 않은 이야기였으면 한다. 지금의 나는 거의 호전됐으니, 아주 조금만 무겁게 생각해본다. 건강이 최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