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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주리 Dec 13. 2022

사건 일기 2

<2022년 12월과 캠핑>

먼저 이야기하자면, 나는 캠핑이 싫다.


캠핑이 싫은 이유를 묻는다면,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을 대신하겠지. 그렇지만 싫은 걸 어쩌겠어. 애초에 나는 여행을 가는 것조차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집에서 쉬었으면 쓸 일 없었을 돈도 쓰고, 사람들 눈치보기 바쁘고, 꿀 같은 주말이 녹아버리니까... 자고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여행을 자주 다녀야 한다고 수도 없이 들었지만, 방구석이 제일 좋은 건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좋은 집에, 편한 화장실에, 컴퓨터까지 두고 어디를 자꾸 쏘다닌단 말이냐.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여행 기피증 히키코모리 집돌이가 되겠지만... (어느 정도 맞다.) 나는 형편만 된다면 여행을 자주 추진하는 편이다. 어쨌든 여행은 재밌으니까. 목표야 항상 해외지만, 주머니 사정상 국내로 가는 게 대다수다. 아니 뭐,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유튜브만 봐도 간접적으로나마 세계 어디든 구경할 수 있는데 뭘, 굳이 큰돈 써가면서... 는 농담이고. 언젠가는 튀르키예를 가고 싶다고 늘 얘기한다.


여행을 간다면, 일행 각자가 가진 '여행의 목적'이 어느 정도 같아야 한다. 같은 바닷가를 보더라도 누구는 뷰 좋은 호텔에서 파도 멍이나 때리는 게, 누구는 당장에 옷 벗고 뛰어들어 수영하는 게 목표일 수 있다. 재밌자고 간 여행에서 괜히 싸우고 토라지고 곪는 이유는... 목적을 통일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내가 바라는 여행의 주목적은 '휴양'이다. 쉬는 걸 목적으로 갔는데, 재미있기까지 하면 금상첨화지. 나는 안정적인 걸 좋아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거나, 어떻게든 '웃어넘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어나길 바란다. 따라서 문제가 생겼을 때 적당히 희생하고 넘길 만하면, 대충 감당하는 편이다. 그렇게 하고 얼른 쉬면 괜찮아진다.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얼른 넘기고 쉬자고.


그래도 여행 가면 기분 좋아.


캠핑은 그런 의미에서 싫다. 쉴 수가 없으니까. 안락한 텐트 앞에서 불멍을 때리는 그 순간의 이면에는 수많은 곡소리가 담겨 있겠지. 텐트를 어디에 치냐부터 시작해서 말뚝을 어쩌고, 지지대를 어쩌고, 불을 어쩌고, 장작을 어쩌고 하는 등등의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다. 난 이런 걸 해보지도 않았었지만, 그냥 싫었다. 깔끔하고 편안한 호텔 방에서 개운하게 씻고 에어컨, 온수매트, 빵빵하게 틀고 잘 자면 그게 여행이지. 심지어 그렇다고 캠핑이 호텔에서 묵는 것보다 월등히 저렴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싫다 싫다 하는 건 좀 편협한 생각이었겠지. 사실 경험해보지 않고도 불 보듯 뻔한 결과일 게 분명한 건 많다. 그러나 어떤 사소한 점 하나가 사고를 뒤바꿀 수도 있는 거니까. 캠핑을 가기로 하고, 나름 계획을 세우면서 나는 언제 캠핑을 싫어했냐는 듯 금세 설렘으로 가득 차 버렸다.


그리고 나는 처음 간 캠핑에서 일행이 각각 가진 '여행의 목적'이 완벽하게 일치되는 쾌감을 느껴버렸다... 누군가는 옛 추억을 되살리려고, 누군가는 추억을 쌓으려고, 누군가는 한 번 경험해보려고 간 여행이었지만. 캠핑장에 도착해서 우리의 목적은 '생존'으로 일치됐다. 조금 더 편안한 결과를 위해 각자가 보다 협조적이고 활동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이게... 캠핑......?


11월 말에 조각 텐트에서 침낭을 덮고 자는 상황은 '1박 2일'에서나 봤던 건데... 더욱이 우리는 일체의 조명이 없었다. 계속 핸드폰 조명으로 앞을 보고 밥을 해 먹었다... 텐트 천장에 끈으로 핸드폰을 묶어서 전등처럼 사용했는데, 그마저도 전기를 끌어올 줄 몰라서 아껴 써야 했다. 충전을 못하니까... 그 조명으로 우리는 보드게임까지 했다. 골반이 뒤틀리는 듯 아파와서 한 판밖에 못했지만, 널찍한 책상에서 하는 것만큼이나 재밌었다.


라면에 들어간 토핑은 어둠입니다.


옆 데크는 각종 조명에, 높고 커다란 식탁, 의자, 대형 그릴, 전선 릴까지 있었고... 어떤 텐트에는 굴뚝이 달려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 그냥 저 사람들은 캠핑에 눈이 돌아갔구나, 하고 말았다. 부럽다거나 그런 것보단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다.


경험해보니 여행과 캠핑은 아예 다른 단어다. 나름 이것저것 챙겨 간다고는 했지만, 설마 이것마저 없을까 하는 부분에서 이미 글러먹었던 거였다. 캠핑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그냥 나무판 하나 달랑 놓고 나머지 모든 게 셀프였다. 조금은 낭만적일지도 모른다지만. 이런 게 낭만이었나... (아아, 꽤 낭만적일지도.)


불멍이고 뭐고, 다 챙겨 와야 하는 줄은 몰랐지. 불 뿜는 도구라고 가진 건 가스버너랑 라이터뿐이었다. 요 근래 날씨였다면 우리 전부 얼어 죽은 채 발견됐겠지만, 그날만큼은 11월 말인데도 유난히 따뜻했다. 자는 동안 조금 덥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정말 다행이었지. 정말 정말로. 딱딱한 바닥에서 자고 일어나니까 몸은 찌뿌등했는데, 새벽에 산골 맑은 공기를 쐬고 있었더니 좀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부지런히 쏘다니는 다람쥐들이 귀여웠던 건 덤.


돌아와서 하루 정도는 푹 쉬어야 풀릴 만한 피로가 여전히 남아있긴 했지만...... 캠핑을 또 가보고 싶었다. 이번엔 좀 더 편하게 글램핑 정도로. 그래도 사계절 전부 경험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봄 캠핑 여름 캠핑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


고생할 게 뻔한 여행을 떠나는 건 질색이었지만, 고생하는 만큼 더 재밌어지는 건 분명하다. 두고두고 얘기할 추억과 경험이 되겠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니까... 그래서 캠핑이 어떠냐면.


아직도 싫다. (ㅋㅋㅋ) 역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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