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하긴 해도...

by 이종덕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암기력은 참 좋은 편 이여서 사회과목의 성적은 늘 좋았다.

수첩 뒤 전화번호부에 줄줄이 필요한 전화번호를 적어서 사용하고 또 새해가 되면

새 수첩에 옮겨 적고 하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냥 외우면 될 것을...


지금.

난 집 전화 번호도 못 외운다


노래를 잘 부르려면

눈을 지그시 감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먼 곳을 응시하며, 가사의 뜻을 생각하며 몰입을 해야

그렇게 불러야 감정이 잡히고 고운 노래가 된다.

가사를 못 외우면 불가능한 일이다.

노래방 자막이 내 가창력을 망쳐버렸다. 자막에 의존하다 보니

이젠 가사를 도통 외울 수가 없게 되었다.

핸드폰 속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전화번호들이

나를 집전화 번호도 못 외우는 멍청이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한국말을 하는 게 분명한데도 TV 밑에 자막이 없으면 잘 안 들리는 것 같다.

책을 읽다가 잘 모르는 부분에 자꾸 클릭을 하려 하는 이건 또 무슨 황당한 현상인지


아날로그 시대에 자라서 디지털 시대에 늙어가고 있는 나는 편리함과 습관의 사이에서

헷갈리며 어중간하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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