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by 이종덕

10월 3일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부는 오늘을 공휴일로 지정을 해주었고 곳곳에 태극기도 걸어줄 겁니다.

31년 전 나는 그 이름도 촌스런 신궁전예식장에서 혼례를 올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결혼사진 속에 내 모습은 장발머리에 깡 말라서 북한 귀순용사의 모습이고 마누라는 당시 유행하던 미스코리아 사자머리에 입술엔 빨간 루주를 발라 촌스런 연변 아가씨의 모습을 하고 있군요. 아! 그리고 아버지가 아주 젊은 모습으로 내 뒤에 서 계시는데 머리를 짧게 깎고 양복이 커서 적십자회담에 나온 북한 측 대표 같습니다. 세월은 흘러 흘러 그토록 곱고 귀여웠던 마누라는 무서운 암고양이가 되었고 내 모습은 동네 담뱃가게 아저씨처럼 푸근해져 버렸습니다.


사실 우리 부부는 국제결혼을 했답니다. 마누라는 부지런한 나라, 나는 게으른 나라...ㅎㅎ 많은 것이 맞지 않고 생각도 다르고, 간간이 싸우기도 했지만 양보하고 맞춰가며 30년을 넘게 잘 지냈습니다. 이제 그야말로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아끼고 사랑하고 이해하며 잘 지내야겠지요.

오늘도 달콤한 휴일의 아침잠이 깼습니다. 마누라 때문입니다. 확실히 국제결혼은 문화적 충돌로 인해 어렵습니다. 마누라는 근면공화국 출신인데 우리 게으른 나라로 시집을 와서 마구 설쳐대며 지 맘대로 살고 있습니다. 일주일치 셔츠 다 대리고 지금은 스팀청소기로 침대 소독하고 있습니다. 침대에서 뭉기적 거리다가 익을 것 같아서 얼른 일어났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총각 때부터 김혜수나 한고은처럼 글래머 보다는 가냘프고 얌전한 내숭 떠는 스타일을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눈도 그리 크지 않고 얼굴에 핏기도 없으며 귀밑머리 넘기며 희미하게 미소 짓는 명세빈 같은 여자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오케이, 그래 그래 뭐든지 말만 해라 이 오빠가 다 해줄게.. 바라만 봐도 보호본능이 마구 솟는 스타일 말입니다.

그래서 가슴 크고 엉덩이 푸짐한 앤젤리나 졸리보다 "시애틀에 잠 못 이루는 밤"에 나왔던 맥 라이언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바뀝니다. 마음도 바뀝니다. 이제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에 겹다 보니 보호본능이며 청순 가련이며 다 소용이 없습니다. 아침 저녁 챙겨주고 와이셔츠 다려주고, 감기 걸려 열 나는 날 전자레인지에 쌍화탕 데워주는, 오늘 아침에도 나가 돈 벌어 오라고 현관에서 구둣주걱 건네주던 기차 화통 삶아먹은 목소리 큰 우리 마누라가 최곱니다.


몇 해 전에 출근길을 마누라가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준 일이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며 고마움의 표시로 시답지 않은 개그를 해 주었는데 잇몸이 들어 나도록, 목젖이 보이도록 깔깔거리며 웃어주더군요.

어디서 봤더라 저 웃음... 회사 앞 화단에 활짝 핀 작약처럼 함박 웃는 마누라의 웃음 참 생소하고 오랜만이었습니다.

부부는 살다 보면 때론 참 생소하고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그해 여름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석 달 간격으로 돌아가시고 졸지에 고아가 된 막내딸이었던 우리 마누라는 추운 겨울과 봄을 지내며 참 많이 외로워했고, 그리워해서 곁에서 바라보기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게다가 간이라도 내줄 듯 사랑하는 사위와 딸마저 구만리 아프리카로 떠나서 더욱더 힘이 들었을 시기여서 우울증 증세가 있을 때였습니다.

그날 난 온종일 반성을 했습니다. 마누라의 마음이 어떨 거란 걸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혼자 바뻤었거든요.


또 한 가지 에피소드

3년 전, 그날도 저녁밥상을 물리고 차 한잔 마시는데 안철수가 기자회견을 시작하려는 중이었습니다. 회견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마누라가 한마디 툭 던졌습니다. "저 사람 그만둘 모양이네 틀림없어".... 진짜로 후보를 포기해 버리더군요..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단상으로 들어오는 걸음걸이를 보고 알았답니다. 허걱.. 나는 순간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가며 완전 졸았습니다. 상갓집에 있다고 거짓말한 것, 비상금 꼬불쳤던 것, 아주 잠시지만 딴생각을 했던 것... 나는 완전범죄였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마누라가 알고도 모른척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마누라는 눈치가 100단이 넘습니다. 그 후로 나는 엄청 조심하며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참 어려운 시기를 함께 넘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린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요... 김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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