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 한그릇

by 이종덕

해가 많이 짧아졌다.

어둑 어둑한 퇴근길, 배는 고프고 비까지 내려 길이 막힌다. 나는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난다.
때 맞춰 마누라가 전화를 했다. " 감기 몸살이 심해서 저녁 준비를 못했어.. 해결하고 들어오면 안돼요?" 순간 욱 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어쩌겠는가.. 아프다는데

아파트 단지 앞 빵집에서 샌드위치나 사가야겠다 생각하고 운전을 계속하는데 집 근처에 "감미옥"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저런 게 있었나? 내가 아는 그 감미옥이 맞나? 하며 차를 대고 식당으로 들어서니 새로 생긴 감미옥 분점이 맞다.
워낙 시장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맛있게 설렁탕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이집 설렁탕은 그릇에 미리 밥을 담아 뜨거운 설렁탕 국물을 서너 번 넣었다 뺏다 하여 밥을 데우는 듯이 토렴 하여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하면 밥의 전분을 어느 정도 빼내는 역할도 하고 반대로 밥알에 국물이 스며들어 밥과 국물이 일체감을 주어 더욱 맛이 있다는 것이다.


설렁탕을 먹을 때는 탕도 탕이지만 깍두기가 맛있어야 하는데 이집에서는 제대로 된 설렁탕용 섞박지를 먹을 수 있다.
널찍널찍하게 썬 무를 배추김치 사이에 군데군데 꽃아서 익힌 섞박지는 가위로 자르지 않고 그냥 한입씩 베어먹어야 더욱 제맛을 낸다.

뜨거운 설렁탕에 파를 듬뿍 넣고 맛있는 섞박지와 함께 한 그릇 먹고 나니 다소 짜증스럽던 마음은 간데없고 포만감에 오래전에 끊어버린 담배 한대 생각이 간절했다.


오래된 식당 중에는 유난히 설렁탕집이 많다. 그만큼 대중화된 음식이고 역사가 깊은 음식이란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 역시 설렁탕집인데 1904년에 개업한 이문 설렁탕이라고 한다.


설렁탕과 관련된 얘기 하나.

1930년대에 형평사라는 조직이 있었다. 이 형평사는 지금으로 말하면 정육점과 소 잡는 백정들의 협회와 같은 조직이다.

형평사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진주에 사는 이학찬이라는 사람의 아들이 보통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학부형들과 학생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이에 화가 난 백정들이 형평, 즉 평등을 이루기 위해 천민 해방운동 차원에서 형평사를 조직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군의 아들에 나오는 김두한의 말에 의하면 당시 형평사의 부회장을 하던 사람이 종로 3가 단성사 골목에 설렁탕집을 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아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 인용)

이집의 설렁탕이 맛이 좋아 인기가 높았던 것은 아마도 푸줏간을 운영하고 협회의 부회장이니 양질의 고기를 구하기가 손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고기를 이용한 음식의 맛의 비결은 구이든 탕이든 좋은 고기를 써야 하는 하는 것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