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직장생활을 하며 참 수많은 상사와 함께했다. 당연히 별에 별 사람이 다 있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이미 상관없는 관계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오늘 진상중에 진상으로 한 사람의 리더를 추억한다.
1. 이 사람은 자칭 패셔니스트이다. 지가 되게 멋있는 줄 알고 옷을 잘 입는 줄 안다.
내가 양복을 새로 사 입었을 때 "자네는 어찌 돈 주고 그런 옷을 사 입나?"
소리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이 양반 즐겨 매는 넥타이가 있는데 넥타이에 악보가 프린팅 되어 있다.
하도 자주 매고 오기에 어느 날 회의시간에 그 악보를 찬찬히 읽어보니 장윤정에 "어머나"였다.
패션에 대한 이양반의 좌우명은 깔맞춤이다.
2. 회사 워크숍이나 행사 때면 꼭 한마디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데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는 모습이 시골 마을회관에서 하는 노인 팔순잔치에 일당 이십만 원짜리 MC 스타일이다.
아주 저급하고 봐주기 힘들게 유치한 데다가 더 가관인 것은 되지 못하게 영어를 자꾸 섞는다.
더 웃기는 건 어디서 본건 있어서 마이크 줄을 한번 감아서 쥔다는 거다.
3. 이 진상은 회식 때 본격적으로 진가를 발휘한다.
자칭 술로는 누구에게도 저본적이 없노라고 개뻥을 치는데 술을 버리는 기술은 정말 탁월하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술을 꺾어 마시면 엄청 눈치를 주고 면박을 준다.
아무리 슬쩍 슬쩍 술을 버린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지도 별 수 없이 취하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오지도 않은 핸드폰을 받는척하며 밖으로 나가서 오바이트를 하고 오거나 바람을 쐰다.
그나마도 자기 없는 동안 지욕을 할까 봐 오래 나가 있지도 못한다.
우리는 진상의 신입사원 시절 무용담을 30번도 넘게 들어 줄줄 외우고 있었다.
4. 자! 이제 1차가 끝나면 노래방을 가야 하는데 본격적인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다.
눈을 지그시 감고 팝송을 하신다. 그런데 가사가 모자라거나 남는다. 럽미 텐더를 러브미 텐더..
이런 식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 자신은 발라드가 어울린다며,
자기의 노래에 눈물을 흘린 여자가 한둘이 아니라며 여자 노래를 남자 키로 부르다가
올라가지 않아서 목에 힘줄을 세우고 용을 쓴다. 문제는 자기도 맘에 안 들었는지 키를 맞추어서
똑같은 노래를 또 한다. 그리고 여직원들 보고 뒤에 죽 서서 코러스를 넣으라고 한다.
어떤 때는 계절에 맞게 개사도 하시고 옥경이 대신 지 마누라 이름을 넣어 부르기도 하신다.
어떻게 어떻게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제 노래방 앞에서 여직원들은 늦기 전에
얼른 가라며 인자한 척 한다. 이미 늦었는데.. 그러면서 우리 이쁜이들 오만 원씩
택시값을 주라고 하신다. 생색은 지가 내고 지갑에서 돈나 오는 일은 절대 없다.
한두 번 당하고 나서는 오줌 누러 가는 척 하면서 사태가 끝날 때 까지 피해있곤 했다.
5. 한 가지만 더.. 몇 년 전 송년회 때의 일.
스탠딩 뷔페식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음식도 먹고 맥주도 한잔 씩 하며 담소하는 식으로
1부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양반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그 특유에 가식이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면 직원들은 음식을 가지러 가는 척 하면서 흩어졌다.
그 모양이 흡사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 같았다. 서너 번 트라이를 하다가 본인도 눈치를 챘는지
또 전화를 받는척하며 로비에 나가서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며 처량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오늘 쓴 글은 특정인을 콕 찍어서 비판을 하려 함도 아니고,
누구를 욕되게 하려 함도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 회사의 상하관계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구태의연한 회식문화, 음주문화..
이런 것 들이 진정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