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좋아할 준비를 하고 듣고 싫어하는 사람의 말은 싫어할 준비를 하고 듣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이 좋음과 싫음의 차이를 넘어 옳음과 그름의 차원까지 적용될 때 문제는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모두를 루저로 만든다.
앵커 백지연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적대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에게 설명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어차피 제대로 듣지도 않고 이해를 안 할 테니까요.
이러한 일방적인 편향이 같은 울타리 내에서 consensus를 이뤄내지 못하게 하는 큰 원인입니다.
불통의 이유이기도 하구요.
소통은 피차의 다름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일방적이면 소통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다름을 그름으로 간주하면 절대로 소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가장 중립적이고 현실적이며 옳은 판단을 해야 할 리더가 자기의 생각과 다름을 옳지못함으로 정해 버리면 그 조직의 소통은 불가능해집니다.
마누라와 크고 작은 이유로 다툰 적이 많이 있습니다.
되새겨 보면 부부싸움은 마누라가 여자라는 것을, 그래서 나와 다르다는 것을 망각했을 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