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끝은 언제나 그 자리에..

아이들에게 자유함의 추억을

by 이종덕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동생이 태어났고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은 나를 강화도에 살고 계셨던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맡기셨습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해까지 3년 동안을 나는 강화도에서 시골아이로 자라났습니다.

그 3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서울에서 살아왔는데 유년 시절의 3년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참 귀한 추억과 경험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썰매 타고 바람 부는 벌판에서 가오리연을 날리며 추운 줄도 모르고 얼굴과 손이 트도록 신나게 놀았지요. 새총으로 참새도 잡고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떼어 구워먹기도 했습니다.

가을이면 지금과는 달리 논에 지천으로 뛰어노는 메뚜기를 잡아서 프라이팬에 볶아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어머니 아버지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고 어쩌다 서울 집에 오면 하루를 못 견디고 어머니를 졸라 강화도로 되돌아 가곤 했지요.


여덟 살이 되어 나는 그토록 신나던 강화도에서의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와 국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처음 몇 달간은 얼굴도 까맣고 촌스러움이 몸에 배어있어 애들에게 놀림감이 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뭐든지 잘하는 아이로 많은 친구들과 놀 수 있었습니다.

팽이도 잘 돌리고, 고무줄 새총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시골에서의 경험을 친구들에게 뽐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돈암동 골목길에 나와 놀던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감성적으로 풍요로웠고 자유로웠던 것 같습니다. 아이 같은 아이였던 것이지요.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씩 강화도에 가 보곤 합니다.

지금은 좁게만 느껴지는 신작로 길 그리고 아직도 그대로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집, 나무, 하늘, 벌판 그리고 50년이 지났어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내 유년시절의 귀한 추억들... 그걸 보러 가는 겁니다.

가장 풍요롭고 자유롭던 그 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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