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후의 의자

by 이종덕

2월 첫날.

월요일은 늘 길이 막히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습니다. 올해도 벌써 12/1이 지나갔군요.


의자에 앉아 오늘 일정을 살펴보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30년을 넘게 똑 같이 반복하는 일입니다.

직장생활을 오래하며 의자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제법 크고 등받이도 머리까지 기댈 수 있는 안락한 의자지만 팔걸이도 없고 딱딱하여 30분만 지나도 온몸이 쑤셔오던 조그만 의자에서 청춘을 보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의자는 인류가 사용하는 가구 중에 제일 오래된 가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의자는 쉼과 편리함이라는 기능적 역할에서 벗어나 일을 하는 곳이 되었고 신분의 상징이 되기도 했으며 여러 가지 의미가 부여됐습니다.


의자 그림을 그리는 화가 지석철씨가 그린 작은 의자는 앉을 수도 없는 형태의 의자이면서 의자이기를 거부하는데 현대 생활에 찌들어 있는 인간을 뜻하며, 빈 의자는 인간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의자는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랑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아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중고시장을 뒤져 어렵게 흔들의자를 산 적이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음악 듣고, 책 읽으며 편안하고 행복한 새로운 탄생의 준비를 하는 아내의 평화로운 모습을 상상하면서.

내 형은 은퇴 후 강화도에 비닐하우스 작업실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목공일을 취미 삼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속의 의자는 2년 전 내 손주 민후가 태어났을 때 형이 이를 축하하며 만든 작은 의자입니다.

형보다 손주를 먼저 보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컸었는데 조카 손주를 생각하며 톱질하고 대패로 다듬으며 정성스레 의자를 만들었을 형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참 따듯한 선물이었습니다.


민후는 저 의자에 앉아 이유식도 먹고 그림책도 보며 무럭무럭 자랐고 이제는 내가 책을 읽으면 자기도 스케치북을 가져와 의자에 앉아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민후의 작은 의자는 절대로 현대인의 찌든 삶을 은유하지 않는 귀하고 소중한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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