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 실패

아직은 때가 아님을...

by 이종덕

지난 월요일

나는 앙큼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 힘든 일이 겹쳐 온종일 마음이 어지러운 중에 있었는데 퇴근 준비를 하다가 단 하루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우선 다음날 연차휴가를 냈고 혼자 술을 마시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집을 제외하고는 혼자 술을 마신 일은 평생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좋은 술집에 홀로 앉아 양주를 마시며 똥폼을 잡아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후 처음으로 외박을 감행하기로 했습니다.

깨끗한 호텔에서 샤워도 하고, 생각도 정리를 하고 무엇보다도 안락하고 하얀 시트가 폭신한 침대에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푹 자고 싶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었지요.


내 야심 찬 계획은 대 실패로 깨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고민하던 일들이 더 커져 버리는 새드엔딩으로 끝이 나버렸습니다.

양주는커녕 소머리국밥에 소주 두병으로 첫 번째 계획은 빗나갔고 두 시간을 넘게 밤길을 걸으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회사 앞 교회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몇 통에 문자메시지와 서너 번의 전화통화로 결국은 집으로 가는 막차 버스에 몸을 싫고 말았습니다.

거실 소파에서 자는 둥 마는 둥 누워있다가 아까운 연차휴가만 날려버리고 지긋지긋하고 지옥 같은 아오지 탄광으로 출근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그날따라 무슨 놈에 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들어오고...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아직은 세상이 내 일탈을 용납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이씨...

이제는 TV에서 드라마 안 볼 겁니다. 공연히 어설프게 따라 했다가 진짜로 똥폼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내 팔자에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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