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우리가 고등학교 때
40년 후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40년이 지난 후 어떤 모습이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유난히도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매일 몰려다니고, 싸우고, 방과 후에 어느 집이든 몰려가 라면 끓여 먹으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플레이보이 잡지를 보기도 하고 통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습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수많은 얘기를 하며 우정을 키워갔던 내 친구 이현상은 군대를 제대한 후 마국으로 이민을 가버렸습니다.
그 녀석을 보내고 나는 깊이 사랑했던 애인에게 실연을 당한 것처럼 한동안을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해야 했습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우리의 젊은 날은 치열한 삶 속에 서로의 존재를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과 이따금씩 전화 한 통으로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며 서로 다른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아이들도 다 키우고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듯 친구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오 년 전부터 이현상 군은 일 년에 한 두 번씩 귀국을 했고 빠듯한 일정 속에서 시간을 내어 그나마 연락이 끊어지지 않았던 나와 함께 밥 한 끼 먹고 차 한잔 마시며 짧고 아쉬운 재회를 하곤 했습니다.
내 face book을 통해서 나머지 친구들이 연락이 닿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 승부가 나지 않았던 만두 먹기 시합의 리턴매치를 추진하자고, 누가 진정 팔씨름이 제일 센지 확인해보자고.. 아이고 보고 싶어 죽겠다고 난리가 난 겁니다.
이현상 군이 보름의 여정으로 넉넉하게 시간을 내어 태평양을 건너 왔습니다.
나는 모두들에게 소집명령을 내렸고 모두들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40년 만에 만난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머리가 반백이 된 녀석들이 서로 끌어안고 주책 맞게 눈이 빨개지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소주 마시며, 옛날 얘기하며 온 밤을 꼬박 새우고도 우리들의 얘기들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살아온 세월은 다르지만, 너무도 달라진 모습들이지만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돌아간 듯 그때 하던 짓들을 그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욕하고, 때리고 여전히 싸우며 그렇게 밤을 홀랑 새워버렸습니다.
친구.
참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단어입니다.
단체 카톡방을 만들고, 이제는 절대로 연락 끊지 말자고 다음 주에 또 만나자고 약속을 하며 다 함께 이른 새벽 해장국을 한 그릇 먹으며 헤어졌습니다.
또 보세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