ぬれおちば(누레오치바)

by 이종덕

누레오치바....비에 젖은 낙엽이라는 말입니다.

젖은 낙엽은 길거리에 눌어붙어 잘 쓸어지지 않습니다. 치워버리고 싶지만 쉽게 치워지지 않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비참한 얘기지만 일본에서는 은퇴하여 경제력을 상실한 남자를 누레오치바라고 한답니다.

거추장스러운 존재...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나는 아직도 운 좋게 직장에 붙어 있지만 내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를 하여 어영부영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자식들 기르고 결혼시키느라 정작 자신의 노후준비는 생각조차 못한 채 덜컥 은퇴를 하게 되었고 평생을 직장에 얽매여 노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안쓰러운 존재가 되어있습니다.

집에서는 갑자기 온종일 죽치고 앉아 삼시세끼 챙겨줘야 하는 능력을 상실한 늙은 가장이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눈치가 보여 밖으로 나온답니다.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산에도 가고 합니다.

요즘 당구장이 잘 된다고 합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누레오치바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놀 수 있는 곳이 당구장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를 치러 가보면 주위에 온통 중늙은이들 뿐입니다.

천 원 내기 쓰리쿠션을 치며, 짜장면 시켜 먹으며 그렇게 노는 것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암울한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빛나는 청춘과 맞바꾸어 버린 미래가 이런 것이라면 그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저녁에 친구들 서너 명이 회사 근처로 온다고 합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은 월급을 받으니까 삼겹살 구어 소주 한잔 살 생각입니다.

그러다 마음이 내키면 노래방에라도 가서 우리가 청춘일 때 부르던 노래도 목청껏 불러보려 합니다.


젊은이들만 헬조선이 아닙니다.

58년 개띠들도 힘에 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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