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도 아닌 평일에 아내와 단둘이 점심을 먹기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어제 온종일 속을 비우고 저녁시간부터는 장을 씻어내는 약물을 무지막지하게 마시며 화장실을 들락거렸습니다.
4리터가량의 약물을 15분 간격으로 마시는 일은 정말 곤혹스러운 일이더군요.
맥주를 그렇게 마시라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래도 한 번쯤은 어디 고장 난 곳이 있나 점검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이번 건진에는 서너 가지 항목을 추가해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쫄쫄 굶은 채로 오전 내내 검사를 받고 나니 몸은 지치고 수면 내시경 후유증으로 정신은 몽롱해서 병원 라운지에서 40분을 넘게 쉬었습니다.
모처럼 나온 길 아내와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보리굴비와 나물반찬 몇 가지로 밥을 먹는데 이게 영 새삼스럽고 어색하더군요.
그만큼 아내와의 식사가 오래된 것입니다.
요즘 부쩍 식욕을 잃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아내가 녹차물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를 얹어 맛있게 먹습니다.
예기치 않은 아내와의 데이트가 새록새록 옛날 연애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닐장갑을 끼고 굴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주고 가시도 발라 주었습니다.
참 많이 좋아하는 눈치입니다.
아이들 위주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했던 그동안의 외식이 조금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건강검진보다는 마음 검진을 제대로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맛있고 편안한 점심 한 끼였습니다.
(양재동 삼라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