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부리 먹으러 딸네 집을 간다.

by 이종덕

손주가 보고 싶어서 자꾸 딸네 집을 가게 됩니다.

주말에도 가고 어떤 때는 퇴근길에도 잠시 들려서 손주와 놀다가 집에 가기도 합니다.

딸이 속으로 귀찮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들 집이라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며느리 눈치도 보이겠지만 설마 딸이 친정 아빠를 귀찮아하랴 싶어서 마음 내킬 때마다 찾아갑니다.


딸이 아주 바쁜 워킹맘이라서 끼니때가 걸리면 딸네 집 앞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는데 덮밥을 아주 잘하는 식당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과 손주와 함께 밥을 먹으면 메뉴가 무엇이든 간에 맛있고 행복하지만 이 집을 서너 번 드나들면서 일본식 덮밥의 매력에 빠져들어 이제는 돈부리 먹으러 갔다가 손주 얼굴 보는 게 되어버렸습니다.


잘 몰랐었는데 돈부리는 일본식 덮밥의 총칭인 것 같고 밥 위에 어떤 것이 올려져 있는 가에 따라 그 재료의 이름 뒤에 "동(丼)"을 붙이는 것 같습니다.

미사리 조정경기장 맞은편의 주택가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이 식당은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입소문이 났는지 초저녁부터 손님이 많습니다.

가게 이름도 재미있는데 "담아내기"입니다. 양파를 뜻하는 일본말 다마내기를 변형시킨 것 같습니다.


어제도 퇴근길에 출출하기도 하고 불현듯 손주가 보고 싶어서 딸네 집으로 퇴근을 했습니다.


미역을 비롯한 서너 가지 해조류를 땅콩소스와 식초로 버무린 해조류 샐러드를 애피타이저로 먹었는데 상큼함과 고소함이 식욕을 돋웁니다.

맥주와 함께 먹기 위해 주문한 저염 명란 튀김은 짭쪼름하고 파삭 파삭해서 맥주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룹니다.

세 가지 종류의 덮밥을 시켜서 조금씩 나눠먹어 보았습니다.

간장과 생강에 삼겹살을 졸여 밥 위에 얹은 "부타 쇼가 야끼 덮밥"과 질이 좋아 보이는 신선한 연어를 얹은 "사케동" 그리고 여러 가지 해물 덮밥인 "카이센 동"입니다.

세 가지 모두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린 절제된 양념과 깔끔하고 개운한 맛입니다.

손주 녀석은 고기밥이라며 부타동을 제일 잘 먹는군요.

이번에는 안 먹었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먹는 돈부리는 가츠동이라고 불리는 돈가스 덮밥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가츠동의 가츠가 이기다라는 동사 카츠(かつ)와 발음이 같아서 일본 사람들은 운동시합을 하거나 시험을 보기 전에 가츠동을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시험 보기 전에 미역국을 안 먹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이제 해가 많이 짧아져서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창 밖이 어둑어둑합니다.

사위는 퇴근이 늦는다고 하고 사랑하는 딸과 손주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가 행복을 주는군요.


일본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셨던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밥 한 공기에 매실장아찌나 명란젓 하나 만으로 식사를 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살아계셨다면 이 집에 모시고 와서 식사를 대접하면 참 좋아하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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