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꽃에게

by 이종덕


아버지 집 베란다에 채송화 화분이 다섯 개 나란히 있습니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다가 그 소박함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한 달 넘게 입원해 계시는 동안에도 혼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기특한 녀석입니다.



옥스데이아이지

지난여름 산책길에 숲 속에 숨어있다가 내게 들켰습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우연히 재회한 연인처럼 그렇게 만났지요.

"보랏빛 꽃잎 위에 당신 얼굴 맺혀있네 두 손 내밀어 만져 보려니 어느새 사라졌네"

('그리워라' 노랫말 중)



맨드라미

닭 볏 같아 계관화라고도 합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묘한 꽃입니다. 징그러워 만지기도 싫었고 향기도 없는 맨드라미

옛날에 살던 수유리 집 마당이 생각납니다.



야로우

그냥 아무 곳에나 막 자라고 꽃 피우는 무심하지만 참 예쁜 꽃

줄기를 툭 꺾어서 상처에 바르면 웬만한 연고보다 좋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야로우처럼 관심받지 못하지만 예쁘고 귀한 것들이 참 많을 테지요



초여름 작약

할아버지는 울 밑에 핀 작약을 함박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난 초여름 출근길 회사 화단에 활짝 핀 작약이 나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겨주었습니다.


나에게는 영원히 어리고 순수한, 자폐를 앓는 아들의 옷장이 망가져서 경첩을 새로 달아주었습니다.

아들의 옷장을 열면서 나니아 연대기를 상상했고 판타지 세계로 빠져들 것 같았습니다. 아들만의 세상으로..

지나간 봄에 자전거를 타고 국도를 달리다가 배꽃이 활짝 핀 배밭을 보며 저기 어디론가 빨려 들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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