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교자와 돈가스
내가 연애하던 시절에는 거의 모든 영화 개봉관이 충무로에 몰려 있었다. 단성사, 명보극장, 서울극장, 스카라극장 그리고 피카디리 극장까지..
토요일은 반공일이라 하여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는 의례히 데이트를 하기 마련이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데이트를 할 때면 영화를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극장이 몰려있는 충무로와 그 옆동네인 명동에는 백화점과 옷가게 그리고 식당들이 자리 잡아 데이트족들의 메카가 되었었다.
지금의 홍대 앞이나 신사동 가로수길 그리고 강남역 일대처럼.
토요일 오후, 영화를 보고 나와 어둑 어둑해진 백병원 앞길을 지나 육교를 건너면 명동성당 길을 지나게 되는데 옛날에는 참 낭만적이고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좋은 길이었다. 겨울이면 군밤이나 땅콩, 깨엿을 파는 노점상들의 카바이트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고 출출해진 배를 채우고 추위를 녹이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 옛 제일백화점 골목에 있는 "명동교자"였다.
마늘 김치와 닭고기 육수가 개운한 칼국수 한 그릇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 었고 언제 들려도 변함없는 맛으로 실망시키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즐겨먹는 데이트 음식이 돈가스였다. 돈가스는 나름 레스토랑에서 폼나게 먹는 양식으로의 지위를 지키고 있던 음식이었다.
요즘 돈가스는 두툼한 등심을 사용하여 만들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미리 잘라 소스를 따로 주어 다 먹을 때 까지 바삭함을 유지하는 게 유행이고 젊은 사람들이 그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때는 소위 경양식집이라고 부르는 레스토랑에서 큰 맘을 먹어야 돈가스를 먹을 수 있었다.
돼지고기를 두드려 얇고 크게 만들어 달걀물에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 얼굴만 한 돈가스에 브라운 소스를 듬뿍 끼얹은 돈가스가 나오면 폼나게 칼질을 해서 먹는 것이다.
경양식집에 들어가서 돈가스를 주문하면 웨이터가 빵으로 드릴까요? 밥으로 드릴까요 묻는다.
밥은 늘 먹는 거니까 빵으로 달라고 하면 모닝롤처럼 생긴 동그란 빵을 버터를 발라 구워주는데 엄청 맛이 좋았다.
이때 빵과 함께 하얀 수프가 나오는데 요즘은 어딜 가도 이런 수프의 맛을 보기가 어렵다.
밀가루와 버터를 1:1 비율로 팬에 저어가며 풀을 쑤듯이 끓여 낸 것을 "루"라고 하는데 여기에 우유를 적당량 붓고 끓여낸 것이 그 하얀색 수프의 정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어찌 되었던 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 중에 먹던 음식이 무엇인들 맛이 없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