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3년 내내 붙어 다닌 단짝 친구가 있습니다.
내성적이고 착한 친구였는데 내가 담배도 가르치고 술 마시게 해서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들고 버려놓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내 아내가 자기의 절친을 소개해 줘서 나와 열흘 간격으로 결혼을 했고 그다음 해에 또 열흘 간격으로 첫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가족여행도 다니고 주말마다 양쪽 집을 오가며 밥도 함께 먹고 술도 마시며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애들 키우고 각자 회사생활도 바쁘다 보니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10여 년 전부터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특별히 감정이 상하거나 다툰 일도 없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소식이 끊겨버린 것입니다.
전화를 걸어 보아도 다른 사람이 받고 내 전화도 번호가 바뀌다 보니 서로 무심한 가온데 세월이 흘러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옛날에 쓰던 수첩이 발견되었고 수첩을 뒤적이다 보니 주소록에 친구의 옛날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011-000-0000..
전화번호를 조합해 보며 친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011은 010으로 바뀌었을 테고 뒷자리 4개는 그냥 쓸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어 가온데 세 자리 숫자 앞에 숫자 하나를 더하여 전화를 걸기 시작 한끝에 세 번 만에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처럼 그렇게 통화를 하고 곧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날 저녁 퇴근하여 아내에게 얘기를 해주었고 바로 여자들끼리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한 세 시간쯤 통화를 하는 것 같더군요.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서로 시간이 맞질 않아 차일피일 미루며 아직도 친구를 만나지 못했고 아내는 지난 토요일에 서로 연락이 물꼬처럼 트여 여고시절 친구들을 오랜만에 그리고 한꺼번에 만났습니다.
애쓰고 내 친구를 찾았는데 아내의 친구들을 찾아주게 된 것입니다.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이제 연락처를 알았으니 언제라도 만날 수 있고 생사확인을 했으니 된 것이지요.
아내를 통해 친구의 그간의 얘기를 먼저 듣게 되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다가 몇 번의 부침이 있었고 어려운 시기를 지내다가 이제 조금 안정이 된 것 같더군요.
크게 도움은 주질 못했겠지만 어려울 때 함께 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마음이 아팠고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걸 왜 여태껏 가만히 있었나 하는 후회도 찾아왔습니다.
이제 내 친구는 나로 인해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이 은퇴한 내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당구를 치거나 핑곗거리 만들어 소주 마시는 게 낙이기 때문에 내가 친구를 찾았으니 만나자고 하면 개떼처럼 몰려올 테니까요.
이렇게 저렇게 서로 다른 모양새로 살다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서로 찾게 되는 그런 세월이 되어버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