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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덕 Sep 11. 2018

부산에서 삼시세끼

KTX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니 여기는 가을이 조금 더 먼저 도착한 듯하다.

하늘도 높고 바람이 시원하다.


당일치기를 해도 되는 출장이지만 바람도 쐴 겸 1박 2일의 일정으로 부산에 왔다.

고맙게도 부산지사의 직원이 역에 마중을 나와 주었다.

1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시장기가 돈다.


부산에서의 첫끼


우리가 남이가 "초원복집"

맛보다는 1990대 초반의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으로 더 유명한 초원복집에서 부산에서의 첫끼를 시작했다.

하지만 맛도 훌륭하다.

이 집의 복은 조직감이 참 좋다.

적당히 쫄깃하고 퍽퍽한 느낌이 없다.

그리고 서울과는 달리 와사비 장이 아닌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복의 맛이 언제 먹어도 색다르다.

오래전부터 다시마와 대파, 무로만 뽑아낸다는  육수가 참 시원하고 담백하다.

언젠가 먹었던 동래파전도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참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대가리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살까지 다 발라 먹었다.

많이 먹었는데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일을 일찍 마치고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왔다.

백사장에 군데군데 파라솔이 꽂혀있지만 철 지난 바다의 쓸쓸한 모습이다.

숙소를 잡아놓고 해변을 어슬렁거려 본다.

불과 2-3주 전만 해도 비키니 입은 아가씨들의 몸매도 흘낏흘낏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부산지사 직원 서넛이 퇴근을 하고 소주 마시자며 찾아왔다.



내가 왕년에 아나고 세꼬시 꽤나 씹어본 사람입니다.


옛날에 동네 골목 어귀마다 있었던 포장마차에서 아나고의 물기를 꼭 짜서 뼈째 썰어주는 아나고회에 소주를 먹는 맛이 참 좋았다.
꼬들꼬들하고 고소해서 씹는 맛이 끝내줬었다.


부산 직원들의 손에 이끌려 아나고 구이의 진수를 만났다.
잘 손질된 생 붕장어를 연탄 석쇠에 구워먹는 것인데 처음에는 양념이 안된 채로 소금에 찍어 먹다가 나중엔 따로 내어준 양념고추장을 발라 한번 더 구워 먹는 것이란다.

소금구이는 소금구이대로 양념구이는 양념구이대로 아나고가 이렇게 맛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좋다.
부드럽고, 고소해서 씹을 틈도 없이 넘어가는 기가 막힌 맛이다.

나는 소주를 마실 때 최소한의 안주를 먹는 편인데 안주를 먹기 위해 소주를 먹긴 처음이다.


우리 일행이 들어갔을 때는 손님이 가득해 서툰 솜씨로 직접 구워 먹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할머니가 오셔서 직접 구워주시기 시작했다.

서툰 솜씨로 직접 구워 먹을 때 보다 맛도 훨씬 좋았을뿐더러 아나고를 먹기 좋게 구어 내시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달인의 포스가 풍겨 나왔다.


 "할머니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하니 인터넷에 내 사진 많이 있을낀데 하시며 이쁘게 찍으라고 살짝 미소를 지으신다.

할머니의 사진이 잘 나왔다.


다 좋은데...
부작용은 소주를 너무 많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부산 남천동 "덩굴 아나고 구이"이다.


적당히 취해서 잠을 잘 잤다.

광안리 바닷가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숙소 로비에 비치되어있는 커피메이커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뽑아 처마 밑에서 바다에 비 내리는 풍경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비 오는 날은 담배 맛이 참 좋다.


조금 늦잠을 자서 11시 기차이기 때문에 아침을 서둘러야 했다.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사이소"

옛날 이른 아침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재첩국을 팔던 소리다.

부산분들에게는 추억의 소리고 정감 있는 소리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늙었고 추운 겨울밤 "찹쌀 떠 억"하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숙취해소, 해장에 재첩국 만한 것이 있나 싶다.

뽀얀 국물에 작고 작은 재첩 알갱이 그리고 부추...

잘 익은 깍두기에 재첩국 한 그릇을 마시니 몸이 가뿐하다.


부산에서의 삼시세끼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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