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보내던 무렵의 단상들

by 이종덕

1984년 가을, 작고 귀여운 여자가 나에게 시집을 왔고 그 이듬해에 자기보다 조금은 더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여자는 무서운 암컷 호랑이로 변했고 그 딸은 여우가 되었습니다. 저는 두 여자 사이에 끼어서 간신히 연명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우는 곧 시집을 간답니다.


요즘 들어 딸에게서 마누라 처녀 때의 모습들이 언듯 언 듯 보입니다.

웃는 모습과 풍기는 느낌 그리고 약간의 까칠함 까지.. 물론 주워온 애가 아니니까 엄마를 닮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제까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거든요. 하여튼 잃어버렸던 젊은 날의 아내를 간간이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들과 사우나에 와있습니다. 더운물에 일주일의 피로를 풀고 휴게실에서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창 쪽으로 보이는 롯데월드엔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마누라와 딸은 지금 웨딩드레스 보러 다니는 중...

아! 세월이 흘러 흘러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군요



요즘에 마누라가 30년 내공을 딸에게 전수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코앞에 둔 딸은 열심히 요리를 배우고 있고요. 신기하게도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이던 아인데 비슷하게 만들어 냅니다.

오늘 아침 딸에게 한 수 가르치는 마누라의 모습에서 산신령의 근엄한 포스가 느껴집니다.



2011년 3월 22일 드디어 딸이 만든 저녁을 먹어보게 되었습니다.

냉이 된장찌개와 콩나물 무침 그리고 불고기까지.. 심청이가 심봉사 봉양하듯 그렇게 저녁을 차려 냈군요. 마누라의 골절과 딸의 신부수업이 맞물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참 맛있게 먹었는데 음식말고 목구멍으로 자꾸 넘어가는 이 뜨거운것은 뭔가요?



주말이 더 바쁜 요즘입니다.

어제저녁에는 딸의 함을 받았고 이제 이번 주 금요일에는 결혼식을 올립니다. 남에 일이려니 했던 일들이 내 일이 되었습니다.

내가 장인 영감이 되다니... 참 좋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제 아침에 세수하면서 엄청 울었습니다.



오늘은 딸아이의 결혼식 날입니다. 곱게곱게 잘 자라서 가정을 이루는 딸이 고맙고 대견합니다. 단 한 번도 속상하게 한 적이 없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착한 딸입니다.

너무 든든한 믿음직한 좋은 사위를 얻었습니다.

2011년 4월 29일 내 일생에 가장 기쁜 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식장에서 몇 번이고 터질뻔한 눈물을 참아내느라 고생 엄청 했습니다.


결혼식 다음날. 베란다에서 비 내리는 앞산을 바라보니 수묵산수화가 따로 없습니다. 화가들은 대단합니다. 어떻게 안개를 그릴 수 있지요?

온종일 잘 쉬고 있습니다. 결혼식에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 전화하고, 차 마시고, 과일 먹고, 낮잠 자고... 푹 쉬라고 종일 비가 내리나 봅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이 쓸쓸함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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