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하찌..

by 이종덕

2년 전 여름 외손주 민후가 태어나던 날 아침.

난 통영에서 쪽빛 남해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밤새 진통을 했다는 딸아이에 대한 걱정과 무사히 출산을 해야 할 텐데 하는 간절한 바람을 초여름 해풍에 날리고 있었다.

통영서 서울까지의 네 시간 길이 얼마나 더디던지.. 창밖의 진초록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천안을 지날 때쯤 탄생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둘 다 건강하다는 말과 함께.

이제 긴장은 설렘과 기쁨으로 바뀌었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회복 중인 딸의 볼을 비벼주고 손주를 보게 되었다.
막 태어난 신생아 치고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바로 업고 나가도 될 것처럼 실했다.

이 녀석 얼굴이 " 언젠가 어느 곳에 선가 한 번은 본듯한" 피가 섞인 주위의 여러 사람의 얼굴을 조금씩 합성해 놓은 듯 친근한 얼굴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무한한 내리 사랑이 샘솟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되었고 나는 벌써 녀석을 데리고 페미리레스토랑도 가고 만화영화도 보는 성급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내 아이들을 낳았을 땐 몰랐다. 새 생명의 탄생이 이처럼 고귀한 것인지를...
내가 너무 젊었을때였기도 했고 경황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딸아이가 몸조리를 하느라고 집에 와있는 동안 외손주를 보고 있노라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 가곤 했다.
이렇게 귀엽고 이렇게 예쁘고 이렇게 신기한 건 세상에 또 없을 것 같다.
숨 쉬고, 찡그리고, 젖 먹고, 똥 싸고, 하품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다 신기하고 귀하다.

벌써 두 돌이 지났고 요놈은 내게 "하찌"라는 아주 맘에 드는 이름을 선물했다. 그리고 휴일이면 이 녀석을 데리고 놀이터를 서성이고 있으며 "민후야 뻥 차봐"하며 공을 굴려주고 있다.

입가에 잔뜩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주고 있으며 심술을 부리면 달래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난 할아버지인걸

내 마지막 역할인 할아버지 역할도 잘 해내고 싶다.

농담인 줄 뻔히 알지만 내가 손주 민후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집에서 나올 때 주인 아주머니가 "어머나 늦둥이신가 봐요"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젊고 건강하고 멋진 할아버지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