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벌백계와 희생양

by 이종덕

은퇴를 하고 나니’ 리더의 조건’ 매거진에 글을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는데 개인적인 얘기가 포함되어 있어 망설이긴 했지만 가급적이면 치우침 없이 얘기를 하려 합니다.


조선 14대 왕인 선조는 일벌백계로 조직의 질서를 잡으려 했습니다.

희생양은 경원부사 ‘김수’였습니다.

김수는 여진족의 공격에 끝까지 항전하고 성을 지켜냈으나 선조는 편파적인 보고로 그를 처형했습니다.

선조는 조정의 인사와 평가의 부조리 그리고 파벌과 디스질이 만연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며 조직을 믿지 못하여 일벌백계라는 편법을 통해 조직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리더의 편법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능력이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파벌을 척결하고 시스템을 정비함이 우선이어야 했습니다.

김수의 건도 김수의 소명을 충분히 듣고 확인을 해야 했음은 당연한 일이고요.


정년퇴직을 3년쯤 남기고 있을 때 나는 회사로부터 신축사옥의 건축사업본부장 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

건축의 경험이 전혀 없었고 제법 큰 규모의 실험시설을 겸비한 건축공사여서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은 발령을 받았습니다.

발령장을 받고 업무를 시작하는 시점에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지 매입과 설계 그리고 시공사 선정까지 이미 마무리가 되어있는 상황이어서 예산 범위 내에서 공사기간을 잘 맞추며 안전하게 관리하면 되겠다고 다소 안심을 했습니다.

터 잡기 토목공사가 끝나고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할 무렵 설계상의 중요한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실험실 공사는 일반 오피스빌딩과는 달리 실험에 필요한 각종 설비가 들어가야 하는데 설비시설이 설치될 공간이 턱 없이 부족하게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설계변경도 해야 하고 이에 따라 인허가 사항도 다시 받아야 하며 당연히 추가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일에 봉착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간의 과정에 대한 각종 서류를 확인해 보니 설계상의 하자였고 설계에 대한 전문가의 검증 없이 설계를 확정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완성된 설계도를 받았을 뿐입니다.


당연히 문제점과 현황자료, 그리고 설계변경으로 인한 추가 예산 등을 포함한 대책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고를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업본부별 업무보고가 있던 날 회장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당신 집을 짓는 것이라면 그런 식으로 하겠느냐며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임을 감지하고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보고서를 제대로 읽었다면 책임소재가 분명한 일인데, 내가 발령을 받기 전 입찰과 업체 선정 과정에서의 문제가 자명한 일인데...

나는 30년이 넘은 직장생활의 내공으로 누군가가 책임회피를 위한 잘못된 보고를 했음을 예측했고 회장은 희생양으로 나를 사용하고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나를 더 이상 건드리면 일이 복잡해질 것을 알았는지 내가 공개적으로 개망신을 당하는 수준에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집 한 채를 지으면 10년을 늙는다고...

그 후에도 수많은 어려운 일들이 많았고 우여곡절 끝에 준공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준공검사가 반려되는 일이 터져 버렸습니다.

문제는 “배연창” 미설치였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저절로 개방되는 배연창을 설치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준공이 지연되고 배연창 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된 것입니다.

입찰 설명회 때의 자료를 보니 시공사에서 설계상에 배연창이 누락되어 있음을 지적했고 설계사는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밀어붙인 내용이 회의록에 적혀 있었습니다.

배연창 문제에 대한 회장의 태도는 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나도 이번 건은 뒤집어쓸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관련 자료를 모두 수집하여 변호사의 의견을 받아 설계사에 내용증명으로 배상을 청구했고 내부 관리부서에도 엄중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결국 추가 공사비와 기타 피해에 대한 손해액을 설계사로부터 받아냈고 천신만고 끝에 건축의 모든 과정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옥을 지었다는 보람은 없고 마음에 상처만 가득했습니다.

회장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가슴 깊이 자리 잡았고 트라우마로 남아 한동안 몹시 힘들었습니다.

이제 그분도 임기가 끝나 회사를 떠났고 나도 정년퇴직을 하여 회사를 떠났습니다.

아직도 그분이 내게 그토록 부정적이었는지, 공정치 못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나의 긴 직장생활 중 최악의 상사로 내 마음에 남아있고 우연히라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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