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에 또 왔다.
40년이 넘게 똑같은 놈들이 모여있다.
벌써 밤바람이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종종걸음으로 친구들이 모여있는 골뱅이 집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바쁠 일 없는데도 발걸음이 빠르다.
후래자 삼배를 받았다.
따뜻한 계란말이 한 조각을 케첩에 찍어먹었다.
무지하게 맛있다.
집에서는 별짓을 다해도 이맛이 안 나온다.
재수할 때부터 걸핏하면 드나들던 집인데 주인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분의 딸도 이미 할머니가 되었다.
별로 친절하지도 안았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마침 골뱅이를 먹으러 갔다가 문 앞에 붙어있는 “喪中”이라는 표식을 보고 수소문을 하여 그 길로 문상을 갔었다.
그날 우리는 육계장국물에 소주를 마셨고 영정사진 속에 할머니가 “여기까지 찾아와서 술을 처먹냐?” 하시는 것 같았다.
골뱅이 무침에 소맥이 몇 순배 돌았다.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고 말도 거칠어졌다.
맨날 똑같은 얘기인데, 수십 번을 넘게 들은 얘기인데 너무 진지하다.
별것도 아닌걸 같고 낄낄거린다.
옛날보다 소주병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리고 모두들 빨리 취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일행이 연배가 제일 높은 것 같다.
골뱅이 맛은 변함이 없는데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이 골목에
참으로 많은 추억을 남겼다.
비 오면 비가 와서, 눈 내리면 눈이 내린다고 마치 성지처럼 모이고 마셔댔다.
예전엔 애인한테 차였다고 질질 짜던 녀석이 이제는 마누라가 밥을 안 준다고, 구박이 심하다고, 시집간 딸년이 신랑한테 푹 빠져 전화 한 통 없다며 징징거린다.
이 골목의 후미진 곳에서 오바이트도 했고 몸을 가누지 못해 벽에 손을 짚고 노상방뇨도 많이 했다.
무릎팍도 몇 번 까진 것 같다.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 애매하다.
2차 없이 술자리가 끝났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다.
다음에 또 보자 하고 헤어졌는데 그때가 언제일지는 잘 모른다.
일주일 후가 될 수도 있고 두세 달을 훌쩍 넘길 수도 있다.
그냥
이곳을 오래 왔으면 좋겠다.
병들어 못 나오는 녀석이 없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