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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덕 Nov 25. 2020

이제는 음식이 추억을 부르는 나이

언제부터인가 어떤 음식을 먹게 되면 옛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함께 먹었던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고 장소도 생각납니다.

김치찌개를 먹으면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맛이 그립기도 합니다.


어릴 때는 흔하게 먹었지만 어느새 먹기가 어렵게 되거나 슬며 시 자취를 감춰버린 음식들도 있고 라면처럼 처음 먹었을 때와는 맛이 달라진 음식들도 많습니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1963년에 나온 10원짜리 삼양라면을 처음 먹어보았을 때 그 느낌과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금은 없어진 상업은행에 다니실 때 퇴근길에 삼양라면 한 박스를 사 오셨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먹었던 라면이 내 인생에 첫 라면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삼양라면만 드셨는데 요즘도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삼양라면을 주로 드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추억을 잡수시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국민연금을 신청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갔습니다.

동사무소도 지금은 주민센터라고 불려 옛날 말이 되긴 했습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라서 슬슬 걸어서 다녀왔는데 길거리에서 진짜 추억의 주전부리를 만났습니다.

번데기와 소라, 고구마튀김을 파는 노점상이 아직도 있었던 것입니다.

국민학교 때 하굣길에 참 많이도 사 먹었던 음식입니다.

세 가지 다 합쳐서 5천 원어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맛있게 나눠먹었습니다.

이게 갯고동인 것 같은데 그때는 그냥 다 소라라고 불렀습니다.

뾰족한 부분을 펜치로 잘라내고 머리 부분을 쪽 빨면 씹을 것도 없을 만큼의 조그맣고 찝찔한 속살이 입안으로 딸려 들어 오지요.

고구마를 채 썰어 튀긴 고구마튀김은 딱딱하고 달콤합니다.

지금처럼 극장에서 팝콘이나 음료수를 팔지 않던 시절엔 영화를 보려면 의례 극장 앞 노점상에서 고구마튀김을 한 봉지 사들고 들어가곤 했습니다.

아내 말고도 고구마튀김을 먹으며 영화를 함께 봤던 두세 명의 여자들이 생각이 납니다.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아내가 군고구마와 시원한 동치미를 내어 주었습니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집안에서 먹는 겨울 간식으로는 제격입니다.

뜨거운 군고구마와 시원한 동치미.. 궁합이  잘 맞습니다.

군고구마 또한 추억이 많은 음식입니다.

추운 겨울날 유난히도 군고구마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퇴근길에 길거리에서 파는 군고구마를 사서 종이봉투를 코트에 품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신혼시절도 빼놓을  없는 따뜻한 추억입니다.

이제는 밥때가 따로 없습니다.

아무 때나 밥이 되든 간식이 되든 되는대로 먹습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중계를 보았습니다.

야구를 보며 티스푼으로 홍시를 파먹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온종일 많이도 먹었습니다.


뭔가를 먹을 때마다 추억이 소환됩니다.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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