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날이 그날입니다.
무슨 요일인지, 오늘이 며칠인지도 잘 모릅니다.
느지막이 일어났는데 아내가 아침을 차리기가 귀찮다고 합니다.
이해가 갑니다.
지난겨울 아내가 장기입원을 하고 있는 동안 밥 차려 먹고 치우는 일이 참으로 힘들고, 뭘 해 먹어야 할지가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래.. 오늘은 집에서 밥 먹지 말자”
대충 씻고 아내와 길을 나섰습니다.
콩나물 황태해장국을 먹었습니다. 국물이 너무 시원해서 장청소를 하는 느낌입니다.
깍두기가 시큼하게 잘 익어 맛있게 한 그릇을 다 먹었습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합니다.
피차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옛날 얘기뿐입니다. 38년을 함께 살았으니 무슨 할 말이 남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앙드레 모두아’라는 철학자는 "행복한 결혼은 죽는 날까지 지루하지 않은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별로 공감이 안 가는 말입니다.
단골로 다니는 화원에 갔습니다.
이곳은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입니다.
온갖 봄꽃들이 활짝 피어 지천입니다.
꽃향기에 취해버릴 것 같습니다. 꽃모종을 사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것 같아 화병에 꽂을 안개꽃과 튤립 한 다발을 샀습니다.
벌써 점심때가 훌쩍 지났습니다.
출출합니다.
특별히 살 것도 없이 백화점을 한 바퀴 돌고 언젠가 한번 가봤던 철판구이집에서 점심도 저녁도 아닌 식사를 했습니다.
前菜로 내어주는 갓 볶아낸 숙주와 양배추가 아삭아삭하고 맛이 있습니다.
도수가 낮은 망고 맥주가 식욕을 돋웁니다.
새우와 관자, 채끝살을 주문해 먹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앞에서 현란하게 구워주는 철판구이는 기분상으로 더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배도 부르고 오랜만에 싸돌아 다녀서인지 나른하고 식곤증이 밀려옵니다.
오후 4시
이제 막 집에 들어왔습니다.
원래는 영화라도 한편 볼 생각이었는데 피곤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얕은 잠이 들었고 차 안에는 꽃향기가 은은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서,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