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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덕 Oct 29. 2021

95점짜리 남편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는 몇 점짜리 남편이냐고 물었더니 95점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5점은 汚點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이 나이에 아내에게 점수를 따서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었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사실 저의 은퇴를 앞두고 아내는 걱정이 많았답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리 편안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사회생활에 권위적이었고 까탈스러웠으며 입이 짧아 식성도 까다로웠습니다.

물론 집안 살림에는 관심조차 없어 간단하게 수리하고 고칠 수 있는 것도 사람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내와 함께 집에 머무르며 처음에는 잦은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려놓음을 깨달았고 과거를 접으며 빠르게 적응해 나갔습니다.

청소나 설거지도 도맡아 하고 밥도 주는 대로 하루에 두 끼만 먹습니다.

강아지들의 산책과 목욕도 시키고 마트에 장 보러 갈 때는 기사겸 짐꾼으로 잔소리 없이 묵묵히 카트를 밀며 아내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닙니다.

얼마 전에 아내가 전구가 나가거나 오래되어 집안이 어두우니 전등 공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견적을 받아보니 전체 교체를 하는데 65만 원이 나왔습니다.

나는 겁도 없이 내가 직접 하겠노라고 했고 아내는 못할 거라며 말렸지만 집안의 전등갓을 다 떼어 세재로 깨끗이 닦아내고 전구를 빼어 세어보니 크고 작은 전구가 38개나 되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조명가게에 가서 구매를 하니 6만 원도 채 되질 않더군요.

그것 마저도 재난지원금으로 결재를 했습니다.

의자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전구를 교체하고 전등갓까지 조립을 해 반나절 만에 공사를 끝냈습니다.

다리도 뻐근하고 뒷목도 땡겼지만 다 해놓고 불을 켜니 너무 밝고 환해 성취감이 들었습니다.

아내도 엄청 놀란 표정이었지요.

내가 못하는 게 아니고 안 한 거야”라며 조금 허세도 부려보았습니다.


적응한다는 것과 잊어버린다는 것은 참 좋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 살아가게 마련인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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