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회사는 남부순환도로를 사이에 두고 우면산과 예술의 전당을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매일아침 한 시간 일찍 출근을 하여 우면산에 올랐고 우면산은 내게 사계절의 변화된 모습과 사색의 시간을 주었지요.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어렵사리 산을 오르다 벤치에 앉아 거친 숨을 고르다가 문득 호두머니 속에 있던 땅콩 몇 알을 벤치에 놓아두었습니다.
다음날 땅콩은 없어졌고 벤치 주변에는 조그마한 산짐승의 발자국이 어지러히 남겨져 있었습니다.
몇 번을 그런 일이 반복되었고 나는 아예 마켓에서 피땅콩을 사서 책상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우면산을 오를 때마다 한우큼씩 호주머니에 넣고 갔습니다.
나를 기다릴 것만 같은 생각.. 땅콩이 없으면 얼마나 실망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나는 벤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청설모 한쌍을 보게 되었고 그들의 작은 눈에서 반가움을 느낄 수 있었지요.
작은 인연과 만남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
배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스쳐 지나가는 이런 순간과 감정들이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내년에도 내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