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단상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by 이종덕

한가위 오후..

나는 선명한 가을 햇살이 드는 거실에서 책 읽고 차 마시며 한가롭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제 장인 장모님 산소 성묘하고 몇몇 군데 선물 돌리고 오늘 아침에는 형집에서 부모님 모시고 아침식사 함께했다. 그게 전부다. 나는 이제 남은 연휴 동안 여유롭게 쉬고 먹고 낮잠도 자고 그러면 된다.


나 어릴 때 추석의 풍경과는 영 딴판이다. 언제부터 이랬을까? 세대가 바뀌며 풍속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긴 하다.

우선 음식 자체가 그때는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들이 지금은 더 이상 특별하지가 않다.

내가 신혼일 때에는 하루 전에 어머니댁에 가서 전도 부치고 갈비찜도 하고 밤 늦도록 음식 준비를 해야 했지만 이번 추석에 조카들은 연휴를 이용해 모두들 외국여행을 나가버렸다.

그래도 그런 것들이 다 용납이 되는 세상이다.


아침을 먹으며 어머니가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죽도록 보고 싶고 오늘 같은 명절엔 더욱더 사무치게 그립다고.. 하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하셨다.

결국은 이번에도 노인네들 마음만 들 쑤시고 말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몇 년 전 어머니의 낡은 책꽂이에서 무심하게 빼어서 읽어본 돌아가신 박완서님의 소설이다.
박완서 씨는 고향이 어머니와 똑 같은 개성이었고 연세도 크게 차이가 나질 않아서인지 어머니는 박완서 씨의 소설을 늘 크게 공감하시며 신간이 나올 때마다 관심 있게 사 읽으시곤 했다.
이소설은 박완서 씨의 자전적 소설인데 한참 꿈 많고, 하고 싶은 일 많은 여고 시절에 6.25 전쟁이 일어난다.
여기 저기서 총알이 날아오고 포탄이 터지는데, 그래서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 하는데 아랑곳없이 마당에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이토록 심란한 중에 갈래 머리 여고생 박완서는 꽃들에게 무심코 한마디 툭 던진다. "미쳤어"라고.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다.
박완서 씨는 미쳤다고 얘기했던 개성 고향집 담장의 꽃을 그리고 또 그리다 저 세상으로 떠났고 이제 이 땅의 이산의 가족들은 너무나 연로하여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몇 년 전 그때도 이산가족 상봉한다며 어머니를 들뜨게 만든 일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써 놓았던 한 편의 시를 옮겨 본다.


離 散


텔레비전에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나옵니다.
내 노부모님도 가족과 60년을 넘게 헤어져 살아가는 이산가족입니다.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저는 말리겠습니다.


한 번의 만남은 상봉이겠지만 그래서 잠시 기쁘겠지만

상봉 후의 기약 없는 이별은 훨씬 더 큰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곁에서 또 다른 깊은 슬픔을 볼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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