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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구 Jun 28. 2019

아빠 회사 제품은 하나도 안 살 거예요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몇 년 전 한국의 대기업에서 10년 동안 근무했던 프랑스인 임원이 해당기업에서 겪었던 경험담을 소재로 책을 출간했다. 그런데 책의 제목부터가 ‘한국인은 미쳤다!’로 가히 도발적이어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는 한국 기업과 한국 직원들이 보여주는 일사분란하고 세심한 업무처리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를 높이 평가했다.

 

지만 그 이면에 나타나는 기업문화를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한국인은 상상을 초월하는 업무량을 소화해내기 위하여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까지 나와서 일을 한다. 한편으로는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온갖 실적 압박과 스트레스의 업무 현장을 자주 목격했으며 본인도 그것을 경험했다. 한국인에게는 가정과 생활이라는 개념은 쉽게 무시되고 그저 일에 묻혀 살아간다는 내용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내용은 그의 아들이 하루는 “아빠, 앞으로 아빠회사 제품은 하나도 안 살 거예요. 회사가 우리 아빠를 빼앗아갔으니까요.”라고 말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 많은 우리의 아빠들은 성공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자녀와의 관계를 희생하고 있다. 필자 역시 해당 기업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 마음이 무겁다. 더구나 그 회사는 인간존중과 화합을 중시하는 설립자의 철학이 중요한 미덕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얼마 전에 국내 유명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후배를 만났다. 그는 대학 졸업 후에 주로 외국계 회사를 다녔는데 필드 영업 분야에 꽤 정통했고, 자신만의 독특한 영업 매너와 방식으로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이후 중간 관리자가 되면서 해당 대기업에 스카우트 되었다. 처음 그의 이직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전 경력들과 비교해 좀 의외의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다녔던 외국계 회사들보다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경직된 우리 대기업 문화를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초기에는 그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좌충우돌, 실수연발의 생활이었다.


전형적인 영업맨으로서 그의 머릿속에는 항상 갖가지의 영업 전략들이 치솟고 그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현장에 적용하고자 했었다. 이러한 적극적인 행동이 이전의 외국계 회사에서는 크게 장려 받았지만 현재의 회사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따라야 하는 수많은 기존의 관행들과 복잡한 보고체계로 인하여 새로운 전략과 아이디어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열정적인 성향으로 보아 초기에는 그의 돌출된 행동들이 상사나 동료들에게 당연히 못마땅하게 보였을 것이고 많은 공격을 당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회사에서 그야말로 ‘왕따’가 될 위기까지 갔었다고 한다. 결국 고심 끝에 우선 자신을 버리고 분위기에 맞추어 살기로 했단다. 


그 후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조직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자신의 방식을 터득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절대 튀지 말아야 한다.’라고. 필자는 그 자리에서 할 말을 잃었다. 어쨌든 현재 그 친구는 외국 주재원으로 대기업의 프리미엄을 잘 누리면서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좋은 전략적 사고와 통찰력이 잘 발휘되

지 못하고 묻히는 것이 안타깝다.


수 년 전에 어느 대기업 종합상사에서 벌어지는 우리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방송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아직 살아남지 못한 존재를 일컫는 바둑 용어가 드라마의 제목이어서 인상적이었다. 회사 내에서 아직 완전한 입지를 확보하지 못한 인턴이나 비정규직 직원의 애환과 힘겨운 생활이 여러 에피소드에 녹아져 있다. 주인공은 프로기사 입문에 실패한 후, 대기업 비정규직 사원이 되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조직의 이기적인 당파문화와 엄격한 계급 체계에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그린 내용이다.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캡처)


앞의 사례들은 지금도 우리 기업 조직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이야기들이다. 조직 저변에 깔려있는 획일성과 파벌주의, 계급의식이 사람을 영혼이 없는 기계처럼 만든다. 마치 스캇 펙 박사가 표현한 ‘아말감 시스템’ 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의 부속품처럼 말이다. 그는 사람이 죽은 후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경험하는 연옥과 지옥을

그린 책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에서 ‘아말감 시스템’ 이라는 기업과 그 안에서 기계적으로 일하는 영혼들의 세계를 지옥으로 표현다.


문명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더 편해지는데 인간은 오히려 기계화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본질이 무시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 즉 다양성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면 자연스럽게 포용의 마음이 생기고 다른 사람의 자존감을 회복시킨다. 그것은 인간성의 회복이자 가정과

사회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특히 기업 조직에서 다양성은 인권의 문제이면서 평등의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것도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 차원을 넘어서 기업 가치의 문제이고 경쟁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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