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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구 Jul 01. 2019

이보시게 우린 너무 치열하게 살았네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이보시게 우린 너무 치열하게 살았네”

모임에 나갔다가 어느 선배 한 분이 대화 도중에 한 말이다. 1980년대 청소년 시절에는 오로지 대학 입시에만 올인 하여 지금의 수능격인 학력고사 준비에만 온 정열을 쏟았다. 당시는 매년 80만-90만 명의 수험생들이 학력고사를 치루고 그 중 일부 학생들만이 서울 사대문 안의 대학이나 지방 명문대의 선택을 받았다. 졸업 후, 사

회생활은 어떠한가? 생존을 위해, 출세를 위해 싸워 이겨야 할 경쟁자들이 늘 주변에 가득했다.


사실상 당시는 1970년대부터 이어온 경제 정책으로 급속 성장을 해오던 시기였다. 그것마저도 없었다면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는 정말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맞다! 우린 너무 치열하게만 살았다.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도 ‘우리’가 아니면 적이 되어 싸워 이겨야 하는 경쟁에 익숙한 시대를 살았다. 우리와 다르면 이방인으

로 배척하던 시대를 말이다.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 호기심을 갖거나 관심의 대상으로 인정할만한 여유도 사실 없었다.


예전에 철학교수였다가 지금은 농사꾼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대안교육에 앞장서고 계시는 윤구병 전 교수님은 그의 저서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간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얼굴 생김은 물론이고 몸매나 신체 기능부터 좋아하는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이 저마다 다 다르다.’ 이 말은 우리가 다양성 자체를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그림  이 연 우


다시 윤 교수님의 말을 빌자면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꼭 같은 책상과 꼭 같은 의자에 앉아 꼭 같은 칠판에 쓰여진 꼭 같은 내용을 모두가 꼭 같은 공책에 적어 꼭 같이 공부하고 꼭 같은 시험문제로 꼭 같이 평가 받았다. 틀린 답은 얼마든지 있지만 맞는 답은 꼭 같이 하나밖에 없다고 배우고 거기에 의심을 품거나 따르지 않

은 학생에게는 열등생 낙인을 찍어 사람대접을 하지 않았다.’ 실로 공감이 가는 말이지만 슬픈 현실이다.


다음은 어느 교장 선생님이 우리 교육의 획일성을 주제로 쓴 칼럼에 나오는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복잡한 거리들을 내려다보고 왕이 말했다. “왜 이리 질서가 없느냐. 모든 길에 방향을 표시해 백성들이 그 방향으로만 다니게 하여라.” 그대로 실시하여 모든 사람이 표시된 방향으로만 이동했다. 그런데 일부 바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앞지르는 것을 보고 왕이 다시 명령했다. “서로 먼저 가려고 다투고 있으니 차례로 줄지어 다니게 하라.” 그대로 실시하자 왕은 길마다 똑같은 모습의 행렬로 그리고 똑같은 걸음걸이로 다니는 질서 있는 모습에 크게 만족했다. 어느 날 바닷가 길에 있는 중요한 표지판 하나가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그 길로 향하는 백성들의 행렬은 표지가 없어 그대로 바다로 향하면서 모두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공동체에서 제도와 규정은 질서를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의 개성과 다양한 가치가 먼저다. 그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제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어느 교육학자는 현재의 우리 교육이 중심 가치와 변방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교육의 중심 가치는 학벌주의와 학력주의, 경쟁과 입시, 진학교육, 성적이다. 많은 학생과 부모들이 중심 가치를 잡으려고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나 선행학습에 집중하는 학원 등을 찾아다니면서 명문대학을 보냈다. 문제는

지금 교육의 중심 가치로는 자신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나 적성을 발견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저 정해진 코스만을 따라가는데 익숙하고 자기의 적성과 비전을 보고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에 맞는 학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적어도 필자가 다닐 때는 대부분 그랬다. 그러니 명문대를 졸업해도 백수신세가 적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도 얼마 전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의 흐름이 변방의 가치로 나타나고 있다. 변방의 가치는 학생의 다양한 재능과 고유한 가치를 살려 협력과 전인적 성장, 혁신학교, 진로교육,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행복한 아이가 내일도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믿음이 중심 가치로 이동하려고 한 바탕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 장수도 여러 번 바꿔보고 전략도 계속 수정하면서 실험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획일화된 전술에도 용감하고 꿋꿋하게 버텨낸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제 다양성이란 지혜의 무기로 무장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흐름들이 우리 교육의 중심 가치로 들어가도록 노력하자.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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