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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구 Jul 16. 2019

당신은 글래머 업무만을 좋아하나요?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진보된 시스템이 자동으로 사람의 일을 훌륭하게 해낼지라도 기업의 실질적인 운영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양성의 관점으로 기업에서 생기는 복잡한 일을 사람들은 어떻게 성취해내는지, 개인의 성취가 기업의 전체 성과로 이어지는지, 특히 성취한 것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평가받는지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어느 기업이든 나름대로의 공정한 성과 측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부분의 평가가 일정시간이 지난 후에 성과를 측정하는 회고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중요한 질문은 ‘과연 각 직원에게 배정되는 업무 자체가 공정한가?’이다. 어떤 사람은 로켓맨처럼 회사의 톱클래스를

향해 질주한다. 대개 회사의 요직에서 중요한 업무 - 우리는 이런 일글래머 업무(Glamour Work)라고 부른다 - 를 배정받아 훌륭히 해낸 사람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단순하거나 행정적인 업무 – 이런 일을 보통 가사 업무(Housework)라고 부른다 – 만을 독차지하며 승진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내는 사람도 있다. 물론 글래머 업무는 보통 책임과 위험이 커서 어떤 이들은 그런 일을 피하고 소위 가늘고 길게 갈수 있는 가사 업무만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회사에서 글래머 업무라 함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프로젝트나 고위 리더의 직접적인 관심을 받는 업무들이다. 예컨대 특정한 주요 고객의 대형 프로젝트에 참가한다든지, 중요한 컨퍼런스에서 회사를 대표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이다. 반면에 가사 업무는 그러한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먼 일들, 회의를 준비하거나 점심 식사를 주문하는 등, 소위 말하는 허드렛일에서부터 매출이나 전략과는 관계없는 행정적인 일들, 꼭 필요하지만 주목은 받지 못하는 업무들을 말한다.

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


한편 최근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여성의 20~30%정도가 일반 백인 남성들보다 더 많은 사무실 가사 업무를 한다고 했다. 특히 유색인종의 여성들이 컵을 닦는 등 본인의 주 업무이외에 사무실의 가사 일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응답했다.


그러면 왜 여성이나 유색인종의 직원에게 더 많은 가사 업무가 배정이 될까? 여기 몇 가지 서로 상관되는 이유들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다고 인정하는 관행적인 고정관념(Prescriptive Stereotypes)때문이다. 예컨대 여성은 모성애로 인한 온화함과 관대함 때문에 자기를 내세우기 보다는 조직을 먼저 생각한다거나, 아시아 인종은 ‘일벌레’라는 식의 고정관념이 자연스럽게 가사 업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관행적인 고정관념이 여성이나 유색인종에게 자발적인 가사 업무의 압력을 받게 하고, 특히 매니저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특히 여성들 스스로가 위험이 높은 글래머 업무를 기피한다는 기존의 주장이 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약 15% 정도의 여성만이 그렇다고 응답했고, 오히려 대부분의 여성이나 유색인종은 높은 프로파일을 지닌 업무를 배정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불평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소

위 ‘출산벽 편견(Maternal Wall Bias)’ 즉 출산 휴가 등으로 인하여 중요 업무가 단절되고 여기서 파생되는 편견 등도 무시 못 하는 이유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할 일은 팀 안에 어떤 가사 업무들이 있는지, 누가 주로 그런 일에 배정받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다음으로 그 업무가 좀 더 공정하게 배정 받도록 기획하는 일이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절대로 자원자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관행적인 고정관념으로 특히 여성이나 그런 일에 능숙하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원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그 대신에 아무리 작은 가사 업무라도 고르게 배정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각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매니저가 글래머 업무를 배정할 때, 믿고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선은 전체 직원이 그 대상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해당 업무에 필요한 능력 요건과 직원 각자의 능력을 비교하여, 자격이 주어지는 직원들이 고르게 기회를 갖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상 업무의 공정 분배 시스템이 단지 여성이나 소수 그룹에게만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잘 나서지 않는 내향적인 사람이나, 우리처럼 조용하고 집단문화에 익숙한 민족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항상 글래머 업무만을 맡아야 하는 스타 직원들이 과중한 업무로 인한 피로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이기도 하다.


앞서 살펴본 글래머 업무와 가사 업무에 대한 연구와 해결 방법은 대부분 미국 기업을 기반으로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면 우리 대한민국의 기업들을 배경으로 문제를 살펴보면 어떨까? 사실상 우리의 소위 토종 기업들은 상하관계가 철저한 계급주의적 성격이 강하고 집단이나 공동체에 익숙한 조직 문화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가 획일적인 업무 배분을 더욱 부축일 수도 있다. 또한 우리의 기업들은 미국이나 서방의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남성 우월적인 조직을 갖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 주류인 백인 남성 대신에, 특정 학연과 지연을 가진 남성 엘리트들이 글래머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경향이 보인다.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는 많은 우리 기업들도 이제는 다양성의 관점으로 글래머 업무와 가사 업무의 문제를 봐야한다. 또한 현재의 복잡하고 불확실한 기업의 문제들을 더 이상 일부의 엘리트에게만 의존할 수도 없다. 각 개인의 전문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되, 공정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업무들이 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은 이것

을 중요한 다양성의 목표로 다루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는 항상 뒤에서 회의 준비와 자료 찾는 일만 하고, 누구는 항상 맨 앞에서 주요 고객 업무만을 맡아서 하는 경우는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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