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구 Jul 11. 2019

원숭이, 팬더곰, 바나나 중에  서로  관련된 것은?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언젠가 성상현 교수님의 칼럼에서 다양성에 대한 재미있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를 살펴보는 설문 사례다. 내용은 간단하다. 동양인 그룹과 서양인 그룹에 ‘원숭이와 팬더곰, 바나나 중에서 서로 관련된 것 두 개를 고르시오’이다.


설문 결과, 동양인 그룹은 대부분 원숭이와 바나나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양인 그룹은 원숭이와 팬더곰을 골랐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것은 동양인이 바라보는 특징은 서로 간의 관계에 주목한다는 것, 즉 관계 중심적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서양인은 공통의 속성을 중요하게 보는 속성 중심적 사고를 한다. 그래서 포유류라는 속성의 공통점을 먼저 본 것이다. 이렇듯 동양인과 서양인은 중심적인 사고가 다르다.


같은 칼럼에서 언급한 전통 초상화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동양인의 초상화는 인물뿐 아니라 지위나 계급을 알아보는 옷차림과 액세서리에도 신경을 쓴다고 한다. 즉 그 사람의 배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에 서양인의 초상화는 인물 자체의 모습과 특징에만 충실하다. 독자들도 한번 확인해 보라.

그림  이연우


누가 원숭이와 바나나를 선택했든, 원숭이와 팬더곰을 선택했든 간에 둘 다 답이다. 또한 초상화가 인물만을 중심으로 하든, 배경을 중시하든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생각이 다를 뿐이다.


기업의 활동영역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되면서 주변에 외국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동료 한국인들이 언어나 생활방식 등에서의 어려움을 알고 대체로 배려를 잘해준다고 한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쉽게 잘 파악하고 이해해 주면서 도와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고의 차이, 즉 보이지 않는 생각의 차이로 많은 갈등을 겪는다고 말한다.


필자도 주로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직업 특성상 많은 외국인들과 일을 해야 했고, 다양한 국적, 문화, 종교, 인종의 친구들과 교류해 왔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우리 고객이나 파트너와 미팅을 하면 흔히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조직 속에 만연해 있는 획일성과 계급의식이다. 때로는 막무가내식의 요구를 하면서 다른 국내 기업들과 비교하는 소위 ‘갑질’을 하는 모양새나, 엄격한 상하관계로 인한 비효율적인 업무 진행 등을 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농담이지만 그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이제까지 여행했던 나라 중에서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가장 예쁘다고 말이다. 물론 대부분 남자이기 때문에 이성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다음 말이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가장 예쁘지만 모두가 똑같이 보인다고 한다. 물론 모두 ‘미인이다’로 해석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성이 없는 인공적인 미를 추구한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온 친구들에게 그런 반응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사고의 차이로 보기보다는 한 번쯤은 우리 자신을 성찰해 보자. 흑백논리 중심의 사고가 관계 중심의 사고로 둔갑한 것이 아닌지, 편협한 획일성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지 말이다.


물론 관계 중심적 사고 자체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관계를 중시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남성과 여성, 신, 구세대, 학연과 지연 등 많은 사조직과 사모임이 생기고, 때로는 ‘우리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인 대립도 생긴다. 오래전에 회식자리에서 건배사로 유행했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것은 ‘우리가 남이가?’라고 선창 하면

전체가 ’ 아니오!’를 연호한다. 이 말뜻 안에 뭔지 모르는 배타성이 묻어있다.


이것이 우리의 다양성 인식이다. 경제나 교육, 사회 현장에서 공동체라는, 단합이라는 명분으로 동질성만을 강조해왔다. 세상의 문제를 옳고 그름의 단순한 패러다임으로만 판단했다. 바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오래된 우리 의식의 문제이고,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았던 우리 교육의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니 결코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교육현장에서, 기업에서, 정치권에서 천천히 다양성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어느 아이의 재능도 잃어버릴 여유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