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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구 Sep 07. 2019

탈 권위 시대의 가르침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표지그림  김윤의만평 (출처: 옥천신문)


탈무드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두 가지 가르침이 있다. 하나는 ‘잘 배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이다(“탈무드형 인간의 끝없는 도전”, 김하). 유대인은 권위보다는 배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탈무드는 아무리 사소한 질문이라도 배움을 위해 깨우칠 때까지 질문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가르치다’는 히브리어로 ‘야 로우’라는 말인데 그것은 가르친다는 의미보다는 ‘인도한다’라는 뜻에 더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권위주의를 경계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유대인 학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지적인 자유를 존중하고 육체보다 정신을 중요시하며, 사람들을 배움으로 인도해야 할 의무로 살아가지만, 권위는 배제한다.

탈무드 (출처: 브런치)


필자는 전에 이스라엘 본사의 글로벌 IT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굵직한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던지라 소위 유대인 회사라고 특별할 것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좀 달랐다. 특히 회의할 때나 교육에 참여했을 때 어느 조직보다도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한 번은 중요한 사업 문제로 본사의 직원들과 회의를 하는데 처음에는 열띤 토론을 하다가 극심한 논쟁이 벌어졌다. 정말이지 그런 시끄러운 난장판을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특히 두 이스라엘 친구의 논쟁은 극에 달해 당장이라도 치고받고 싸울 기세로 보였다. 그렇게 전쟁 같은 회의는 아무 결론 없이 입장만 정리하고 마쳤다. 물론 필자는 그 분위기 속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 조용히 입 다물고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곧 점심시간이어서 식당으로 향하는데 좀 전에 가장 처절하게 싸웠던 두 사람이 내게 다가와 웃으면서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한다. 의아했다. 좀 전까지 치고받을 기세였던 두 사람이 사실은 친한 친구란다. 더 놀란 것은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보스였다. 무의식중에 나는 보스인 친구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답은 ‘뭐가?’ 오히려 필자에게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필자의 생각을 솔직하게 설명했다. 그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자기들은 늘 그렇게 싸운다고 말한다. 그리고 생각이 다르니 논쟁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논쟁하면서 문제의 핵심을 똑바로 보려 하고 가능하면 여러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해결책을 찾는다는 의미다. 더구나 그 보스인 친구는 매번 다른 생각으로 덤비는 자기 친구가 믿음이 가고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필자에게는 정말로 특별하고 귀한 경험이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유대인의 권위주의에 대한 또 다른 예가 있다. 유대교에는 신의 형상이 없다. 그리스도교에서 신은 항상 자비로운 남자로 그려진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신을 이미지화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 그들은 절대 유일신을 인간이 형상화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 말은 권위는 오직 신에게만 있고 인간에게는 어떠한 권위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성경에 있는 간단한 예로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이야기를 보자. 모세가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 휴식 시간에는 ‘사람들과 같이 그저 돌 위에 앉아 있었다.’고 전한다.


유대인은 꾸민 권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탈무드에서도 ‘가르침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받아들이는 사람은 권력을 부패시킨다.’고 했다. 유대인의 대표적인 학자인 마르크스나 프로이트, 아인슈타인과 같은 개혁자들은 일단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즉 기존의 것을 먼저 의심하면서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그림  이연우


흔히 요즘 사람들도 권위 의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권위를 바라는 사람은 꽤 있는 것 같다. 돈이 많으면 또는 권력을 손에 쥐면 권위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요즘 방송에서 심심치 않게 여러 모양의 갑질 행태들이 나온다. 재벌 회장의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공짜로 권력을 물려받아 권위를 남용하여 피해를 주는

행위, 오늘날 상상하기 힘든 기업 회장의 직원 폭력 행위, 정치적 권력을 내세워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 모 대형교회 목사가 세습을 위해 권위를 앞세워 저지르는 행위 등, 알려진 수많은 갑질은 잘못된 권위 의식에서 비롯되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필자도 탈무드의 모든 가르침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만연한 계급주의와 권위주의로 인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 각각이 가진 다양한 생각과 재능들을 유감없이 펼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탈권위의 사회를 지향하는 탈무드식 가르침은 좀 배워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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