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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구 Oct 30. 2019

당신은 클래스 이주자?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클래스 이주자(Class Migrants)’란 말을 들어 보았는가? 그것은 보통 블루칼라의 부모 밑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상위 클래스로 즉 엘리트 클래스의 위치로 올라간 사람을 말하는 미국식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타고 자수성가한 사람’ 정도가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과 같이 정의와 공평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서, ‘클래스’나 ‘계층’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미국에서든 우리나라에서든 조심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20세기까지만 해도 경제세대들이 주로 힘들고 어려웠던 전통세대의 부모 밑에서 자란 계층이어서, 일부 특권층이나 재벌 같은 소수 계층을 제외하고는 미국식 클래스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 대신에 SKY나 KS와 같은 학연이나, TK나 PK와 같은 지연에 의한 엘리트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면서 부유한 베이비붐 세대 밑에서 자란 경제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서서히 미국식 클래스와 유사한 엘리트 클래스를 만들고 이것이 기존의 학연과 지연까지 더해져 더욱 두터운 클래스를 생성하게 된다. 결국 이들이 정치, 경제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고 그 안에 속해있는 소수의 열성적인 클래스 이주자들을 볼수 있다.


그런데 조사에 따르면 97%의 클래스 이주자들은, 그들이 자라온 배경이 경력을 쌓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응답했다. 예컨대 여전히 조직에서 낮은 레벨로 취급을 받거나, 엘리트 의식이 만연한 집단에서 따돌림을 받는 등 또 다른 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클래스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기준이 된다.


일부 고의성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클래스에 의한 편견은 일종의 무의식에 의한 편견으로, 기업에서 성별이나 인종에 대한 편견의 문제와 유사하다. 예컨대 기업의 후보자 채용과정에서 ‘문화적 적합성(Cultural Fit)’이라는 항목이 있다. 그것은 후보자가 해당 조직 문화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평가하는 항목으로 많은 기업이 필수적으로 적용한다.


문제는 많은 평가자가 문화적 적합성을 주로 엘리트 클래스의 선호나 취미로 평가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거나 악기를 잘 다루는 취미, 스포츠는 폴로나 서핑 등을 좋아하면 문화적 적합성에 큰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여러 로펌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경력이나 학력부분은 거의 동등하게 하고 단지 엘리트 클래스와 일반 후보자군의 취미만 다르게 이력서를 기재하여, 평가자들이 인터뷰 후보자를 스크린닝 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엘리트 클래스의 후보자는 약 16%가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일반 후보자는 고작 1%만 받았다고 한다.


이런 평가가 꼭 잘못되었다거나 엘리트 클래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후보자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자라온 배경과 문화에 의해 평가된다는 점이고, 대개 그것들이 업무의 성과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이후다. 비록 클래스 이주자가 어려운 관문을 뚫고 채용되었지만 다수의 엘리트가 선호하는 양식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클래스 이주자는 상대적으로 업무에 대한 집중력이 부족하고 일에 대한 야망이나 태도가 약하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편견이다.


오히려 클래스 이주자는 특권층이나 엘리트 출신들이 가지지 못하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고 한 연구 결과는 말한다. 예컨대 클래스 이주자 출신의 CEO들은 대개 중요한 문제나 위험을 과감히 돌파하는 능력이 엘리트 출신보다 더 우수하고, 끈기와 인내력이 강한 반면에 특권의식은 없어서, 대고객 서비스나 문제 해결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고 한다.


한편 클래스 이주자는 보통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까봐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가족 부양의 의무가 강하다. 그들 부모가 주 80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어떠한 명예나 영광을 얻기보다도, 오로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살았던 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래서 보통 성공한 클래스 이주자들은 왜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쓸데없이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면에 경제적으로 자유롭고 가족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난 엘리트들은, 어릴 때부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야망과 전문성을 위해 살아야한다고 교육을 받았고 그렇게 믿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클래스 이주자에 대한 반대의 편견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이제 클래스 이주자를 다양성의 측면으로 봐야한다고 말한다. 기업은 채용에서부터 직장 생활에 이르기까지 클래스 문제를 잘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의 몇 가지 팁을 제안했다.


첫째, 특정 학교 출신의 편중된 채용 패턴을 바꾸라는 것이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이나 우리나라의 SKY 대학에 편중된 채용을 말한다. 특히 하버드 대학 학생 부모의 반 이상이 미국 상위 10% 이내의 부자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2018년 조사에서 SKY 대학 학생의 46%가 고소득층의 자녀로 확인되어, 부나 소득에 따른 교육 영향이 미국이나 우리나라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사한 클래스의 문제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기업이 특정 학교 출신으로의 편중된 채용 패턴을 다른 방향으로 수정하면 일부 클래스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대표적인 IT기업인 구글은 아이비리그뿐 아니라 주립대를 포함한 중, 상위 대학들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채용한다. 이것은 구글이 자체 조사 결과, 평균수준의 아이비리그 출신보다도 상위

수준의 주립대 출신의 직원이 더 좋은 성과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 만약 문화적 적합성이 채용항목에 꼭 들어가야 한다면 그것을 확실하게 정의하라는 것이다. 구글은 그것과 유사한 ‘구글리니스(Googleyness)’란 항목을 넣어 ‘인생을 어떻게 즐기는지’, ‘자신이 틀렸을 때 인정하는 지적 겸손’, ‘모호한 것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능력’, ‘도전하는 자세’ 등으로 정의했다.


셋째, 가급적 직원 소개 채용(Referral Hiring)을 제한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가까운 친구나 아는 사람으로만 소개하여 채용한다면 그 조직은 획일적인 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획일적인 조직은 문제 해결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발전도 저해한다. 무엇보다도 직원 소개 채용으로는 해당하는 역할에 꼭 맞는 최적의 후보자를 찾기에도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성과에 앞서 팀워크에 의한 성과를 더 높이 평가라는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클래스 이주자들은 개인의 성과보다는 팀에 기여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비록 클래스를 언급하는 것이 아직까지 어색하고 민감하지만, 이제는 다양성의 한 면으로 봐야할 때가 된 것 같다. 엘리트주의가 정치 집단이나 경제, 사회조직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똑같다. 오히려 귀족주의에서 파생된 미국식 엘리트주의에 학연과 지연까지 포함된 더 큰 그들만의 리그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클래스로 자리를 잡고 고착되려고 한다. 반면에 클래스를 이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점점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이것은 인력 다양성으로 좋은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면에서 국가적인 손실이자 기업에게도 큰 잠재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


2012년에 미국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면 당시 전체 등록 대학생의 61%의 부모가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산업 근로자나 일반 노동자 계층이었다고 한다.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도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클래스 이주자가 되려는 다수의 후보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고군분투하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정부와 기업들은 클래스의 문제를 다양성의 측면으로 충분히 인지하고 이에 맞는 정책으로 그들에게 문을 열어줘야 한다. 클래스 이주자의 문제는 이제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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