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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구 May 03. 2020

획일성이 아니고 통일성이야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수년 전 어느 목사님의 인상 깊은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두 가지 사건에 관한 내용인데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비교적 잘 아는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과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에 관한 얘기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예수 승천 후에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예수가 생전에 약속했던 성령이 내려진 사건을 의미한다. 성령이 내리자 각 사람은 서로 다른 말, 즉 방언으로 기도를 했고 그 격식과 형식은 다양했다. 이것은 성령의 기적과 친교라는 측면에서 기독교 교회의 시작이 되는 위대한 사건이다. 성령강림 사건은 예수를 중심으로 다시 모인 그리스도인들이 한마음을 회복한다는 정신으로, 기독교 공동체의 새로운 시작점인 것이다. 


다음은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이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하나님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바벨탑의 건설은 결국 혼돈 속에서 막을 내렸고, 탑을 세우려 했던 인간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불신과 오해 속에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사건이다. 바벨탑 사건 이전에는 ‘온 땅에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라고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언어가 하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오만무도한 마음을 보시고 그것을 흩어버린 것이다.      

바벨탑 (출처: 네이버 포스트)

위의 두 사건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먼저 언어가 하나가 되는 것 즉 격식이나 형식이 진정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의 언어가 되니 인간들은 오만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할 때는 각각 다른 언어로 다른 모양으로 내려졌지만, 전체의 내용물은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얘기하기를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고 있었다’ 라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통일성과 획일성의 차이와 그 의미를 새겨봐야 한다. 흔히들 하는 얘기가 있다. 공동체 속에 속한 각각의 개인은 더없이 훌륭하고 좋은 사람인데, 왜 다른 공동체와 만나기만 하면 자꾸 헐뜯고 싸우는지. 특히 정치 공동체에서 자주 보는 현상이다. 

정치뿐 아니라 언론이나 학계에서도 진보와 보수, 이분법적 논리로 매사를 설명하거나 결정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획일성이다. 

다행히 실패로 끝난 정책이지만 몇 년 전에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방침이 있었다.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하나의 렌즈를 통해 우리의 후대에 주입하겠다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획일성의 극단적인 사례가 된다.      


한편 위의 두 사건으로 목사님이 강조한 것은 통일성이다. 통일성은 격식의 통일이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이 통일성이 곧 다양성을 의미한다. 즉 통일된 공동체의 정신은 각 사람의 기질과 능력을 인정하면서, 내용물에서는 통일을 이루는 정신을 말한다. 

예컨대 우리나라가 성장하려면 더 많은 진보가 출현해서 지경을 더 넓혀나가고, 보수가 기존의 가치를 잘 지켜내면서 진보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진보로 가야 해 또는 모두 보수로 가야 해’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진보와 보수가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여 더 큰 나라 사랑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통일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바라보는 아량의 철학이 필요하다. 성철스님은 ‘함께 사는 일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인내하는 순간들이 모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해인 수녀님은 공동체의 통일성을 다음과 같이 꽃과 꽃술에 비유했다.     


‘공동체에서 함께 사는 이들의 겉모습이 하나의 꽃이라면, 겉만 보고 잘 알 수 없는 그들의 내면이 꽃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양한 모습을 한 꽃이 저마다의 다른 꽃술을 지니고 있듯 사람 또한 그러하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을 있는 그 모습으로 존중하고 인정할 때 참된 우정과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적이 많아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지만’.

(출처: 다음 블로그)

‘어떤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날카로워 보여 다가가기 힘들지만,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지혜와 분별력의 예리한 꽃술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꽃술은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정리해주는 명쾌함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우 느리고 답답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든 이를 차별 없이 감싸 안는 포근한 사랑의 꽃술로 위로를 준다. 

어떤 사람은 덜렁대고 말이 많아 보여도 그것은 부분적일 뿐, 항상 주위를 밝고 환하게 만드는 명랑함의 꽃술로 기쁨을 준다. 

또 어떤 사람은 무뚝뚝하고 재미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깊고 어진 심성을 지니고 있어 신뢰를 주며, 어떤 일이 닥치면 희생과 책임감의 꽃술로 의리를 지킨다. 

그러니 나와 다른 여러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숨어있어 못 보았던 그들의 장점과 특성을 잘 발견해 기쁨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출처: 샘터


다른 사람의 다양한 재능과 능력을 발견하여 자신의 것과 조화를 이루고,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 그것이 결국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또한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한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는 다양성의 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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