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최근 발생하는 여러 성차별적인 사건을 미디어를 통해 접하면서,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은 과거 사상 기반의 남성 주류의 잔재가 남아있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수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Me Too’ 운동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일간지 기사에서 제시하는 대한민국의 여성 자살 사망자 통계는 더욱 충격이 아닐 수 없다. 1985년에서 2015년까지 여성의 연령별 자살률에서 젊을수록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즉 1951년생 여성보다 1982년생 여성의 자살률은 5배가 높았고, 1986년생과 1996년생은 각각 6배와 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82년생 김지영’ 51년생 엄마 세대보다 살기 더 고달파, 동아사이언스, 2019. 06).
이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여성들이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비혼과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한편 요즘 곳곳에서 벌어지는 젠더 평등을 위한 페미니즘 운동의 모멘텀이 되고 있다.
한편 젠더 평등(Gender Equality)은 유엔(UN)이 지정한 지속 가능 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중에서 다섯 번째 항목이다. 즉 젠더 평등은 이제 여성들만의 또는 소수 그룹만의 운동이 아닌 전 지구적 사명으로 인식해야 하고 체계적인 솔루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광고계에서도 젠더 평등의 바람을 일으키면서 적극적으로 현실 참여를 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광고계의 축제인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Creative Festival)은 주로 기업의 브랜드 홍보나 상품, 서비스 마케팅 위주의 콘텐츠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들을 제시한다고 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최근 페스티벌에서 제시한 젠더 평등을 위한 솔루션과 그 결과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되어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크리에이티브 솔루션, 젠더 평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다”, Diversitas 2호, 고려대학교 다양성위원회, 2020).
1. Project Free Period
첫 번째 사례는 ‘Project Free Period’라는 주제의 프로젝트로서, 여성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솔루션이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여성의 인권을 다룰 때 항상 등장하는 나라가 바로 인도다. 성적 억압이나 사회적 차별에 관한 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대부분 여성은 생리가 코로나19처럼,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반대로 생리 기간이 꼭 필요한 여성들이 있다. 바로 사창가에서 성을 파는 인도의 직업여성들이다. 생리 기간 3일만큼은 직업상 일을 하지 않고 쉴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실로 말로 표현하기에도 너무 가슴 아픈 현실이다. 누구에게는 없었으면 하는 3일이 누구에게는 꼭 있어야 할 3일인 것이다. 이들은 보통 이 3일 동안 아이들과 쉬거나, 빨래 등 집안일에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이 아픈 현실에 대한 솔루션으로 인도의 여성 위생용품 회사인 스테이프리인디아(Stayfree India)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단 3일인 생리 기간을 활용, 이들의 미래를 위한 작은 투자를 시작했다. 그리고 전문가들과 함께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그들을 교육시켰다. 예를 들면 뷰티 마사지, 헤나 디자인, 양초 만들기 등이라고 한다. 특히 참여하는 여성들은 이 교육을 통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직업을 물려받을 딸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이 그들의 생리 기간을 가장 순결하고 고귀한 순간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프로젝트 후에 매년 십만 일이 넘는 생리일이 배움의 날로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젝트는 인도에서 가장 터부시되는 매춘과 생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요구하는 사회적 의제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비참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꿈을 꾸게 해주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2. The Tampon Book
다음 사례는 ‘The Tampon Book’이라는 주제로 독일에서 진행했던 것인데, 여성을 위한 제도 개혁 솔루션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독일에서 보통 생필품에 부과하는 세금은 약 7%다. 그런데 여성의 생리를 위한 위생 필수품인 탐폰의 세금은 무려 19%다. 이것은 독일에서 고가의 명품에만 부과하는 가장 높은 세율이다. 탐폰이 고가의 명품일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것은 남자가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약 50년 전에 독일에서는 남자들만 모여서 법을 제정했는데, 당시 여성 위생용품에 19%라는 엄청난 세율을 부과했다는 것이고 그 법이 여전히 유효했던 것이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이 있어서 이미 개정했는데, 칸트를 배출한 이성의 나라인 독일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여전히 존재했던 것이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탐폰을 판매하는 기업인 ‘더 피메일컴퍼니(The Female Company)’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독일에서 책에는 7%의 세금만 부과되기 때문에, 책 속에 탐폰을 끼워 넣어서 책값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탐폰북(Tampon Book)’이다. 약 40페이지 정도로 구성된 이 책에는 15개의 탐폰이 들어있다. 그리고 책 내용에는 성 불평등이나 어리석은 세금 제도, 그리고 생리에 대한 올바른 사회 인식에 관련된 삽화 등이 실려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일주일도 안 돼서 1만 권이 팔렸다. 그리고 독일의 주요 매체들이 이 탐폰북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여론이 형성되고 법 개정을 요구하는 탄원 운동이 일어나면서 결국 2019년 11월 7일에 독일은 탐폰세를 폐지했다. 이 탐폰북이 법을 바꾼 것이다.
3. Fearless Girl
마지막 사례는 ‘Fealess Girl’이라는 주제의 프로젝트인데,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높이기 위한 솔루션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2017년 3월 7일에 뉴욕 맨해튼 남쪽 월스트리트에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소녀상이 세워졌다. 소녀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맞은편에 있는 월가의 상징인 황소를 늠름하게 쳐다보고 있다. 다음의 그림과 같이 말이다.
이 소녀상은 한 투자자문회사가 주도해서 세워진 것인데, 아직도 기업이나 단체가 남성 위주로 운영되는 것에 반기를 들기 위함이란다. 한마디로 여성 리더십의 힘과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이다.
소녀의 발치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여성 리더십의 힘을 믿어라. 그녀가 차이를 만든다(Know the power of woman in leadership. SHE makes a difference)’라고 말이다. 작가 크리스틴 비스벌(Kristen Visbal)이 만든 이 소녀상은 이곳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의 눈길을 끌면서, 기념 촬영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많은 여성이 소녀와 같은 포즈를 취하면서, 남성의 권력으로 상징되는 황소를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는 연출을 한다. 이것은 또한 공공 예술의 힘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여성의 날을 기념하면서, 남성의 상징인 황소상 앞을 장소로 선택했다는 것도 참으로 영리한 발상이다.
결과적으로 이 소녀상은 740만 달러 가치의 홍보 효과를 얻어냈다고 한다. 또한 여성의 리더십을 부각하려는 원래의 목적도 충분히 달성했다. 무엇보다도 이 솔루션이 미국에서 그동안 많이 제기되었던 성차별적인 문제보다는, 업그레이드된 여권 신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21세기에 인간은 화성도 다녀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뇌를 대체할 것이라고 자랑한다. 이러한 세상인데, 한편으로 지구의 곳곳에서는 사회적 차별로 인해 더욱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발견된다. 이것은 비단 저개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선진국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오래된 낡은 법이, 여성의 일상과 가정 경제를 옥죄고 있다. 이렇게 남녀 간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앞서 소개한 솔루션과 같은 젠더 평등의 노력이, 광고계를 비롯한 여러 민간단체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와 같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여러 기업이나 미디어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발되고 실현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