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박사의 스타트업 칼럼
스타트업의 시작은 제품이 아닌 고객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고객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스타트업의 성공은 시장에 제품을 내놓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핵심은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을 필요로하는 고객의 정확한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목표 고객을 정의한 뒤에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바로 ‘선택한 목표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수준을 넘어,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제안할 것인지 고민하는 단계다. 그것은 고객에게 전달할 가치 제안이나 그 가치를 실현하는 상위수준의 제품사양, 스타트업의 잠재력과 성장을 보여주는 핵심역량을 정의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목표시장에서의 경쟁 구도에 관해 논의할 차례다.
경쟁적 지위 차트(Competitive Position Chart)
경쟁적 지위(Competitive Position)란 핵심역량을 통해 제품으로 구현된 독특한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했을 때, 얻게 되는 시장 내 경쟁력을 의미한다. 즉 스타트업의 목표 고객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가치를 제품에 담아 시장에 내놓았을 때, 다른 유사 제품이나 대체품 대비 어떤 위치에 설 것인지에 대한 평가다. 이를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쟁적 지위 차트(Competitive Positioning Chart)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차트는 목표시장 내 경쟁자들과 비교해 스타트업의 강점과 약점을 한눈에 보여주는 도구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비교 기준을 정할 때 목표고객, 즉 페르소나의 구매 기준 우선순위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X축은 페르소나의 가장 중요한 구매 기준, 즉 1순위 우선순위를 배치하고 Y축은 페르소나의 2순위 우선순위로 둔다.
이 두 축은 페르소나가 제품을 선택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고객의 실제 니즈를 반영하여 경쟁자와의 비교를 보여준다. 즉 이 그래프를 통해 어떤 제품이 페르소나의 주요 기준에서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그림 1)1.
상기에서 XYZ 기업은 페르소나의 최우선순위 기준으로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다. 이는 목표고객의 가장 중요한 니즈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역시 이러한 위치를 지향해야 하며, 목표시장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경쟁적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경쟁적 지위가 오른쪽 상단에 있지 않거나 경쟁자가 더 높은 위치에 자리한다면, 이는 초기 시장 선택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다시 시장 세분화 작업으로 돌아가 목표 시장을 재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스타트업의 핵심 역량과 경쟁자 대비 우수성을 재검토하고, 적합한 목표시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사실상 경쟁적 지위 차트는 흔히 볼 수 있는 시각적 도구지만, 중요한 것은 이 차트가 목표고객의 최우선순위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는지 여부다. 예를 들어, 고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적시에 상품을 출시하는 것인데, ‘우리 솔루션을 사용하면 $$$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라고 제안하면 결코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페르소나의 우선순위는 앞서 다루었던 가치제안이나 제품사양을 결정하는데 기준이 될 뿐 아니라 경쟁적 지위 차트로 연결되면서 전체 사업의 방향을 설정하는 나침반과 같다. 여기에 해당 스타트업의 핵심역량이 제품의 경쟁력에 가세하면서 경쟁적 지위를 확고하게 만들어준다(그림 2).
변화를 거부하는 고객 vs. 경쟁자
경쟁적 지위 차트를 설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 중 하나는 ‘변화를 거부하는 고객(Do Nothing Customer)’이다. 이러한 고객들은 기존 상태를 유지하는 데 익숙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필요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도입하는 데 있어 큰 도전 과제가 된다.
1979년, 소니(Sony)는 ‘워크맨(Walkman)’이라는 포터블 카세트 플레이어를 출시하며 음악 소비 패턴에 혁신을 가져왔다. ‘걸어다니며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듣는다’는 개념은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워크맨이 처음 등장했을 때, 소니의 가장 큰 경쟁자는 기존의 대형 스피커와 라이브 콘서트와 같은 전통적인 음악 청취 방식에 만족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고객들이었다. 소니는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는 고객을 설득하기 위해 단순히 기술적 우수성만 강조하지 않았다. 대신, 워크맨은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소니는 ‘음악을 휴대한다’는 혁신적인 개념을 제시하며, 사람들에게 어디서나 자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광고와 마케팅 캠페인에서도 활동적이고 자유로운 이미지를 활용했다. 워크맨을 사용하는 인물들은 공원에서 조깅을 하거나, 산책로를 걷거나, 여행 중에도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새로운 생활 방식을 상상하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소니의 워크맨 사례는 스타트업이 경쟁적 지위를 구축할 때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특히 변화를 거부하는 고객이 큰 장벽으로 다가올 때, 제품의 기술적 특징을 넘어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트업은 고객의 기존 습관과 태도에 도전하는 동시에, 그들이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강조해야 한다. 소니처럼 경쟁적 지위를 혁신의 아이콘으로 끌어올리고, 단순한 제품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제안할 수 있다면, 변화를 거부하는 고객조차 설득할 수 있다. 결국, 성공적인 경쟁적 지위는 고객의 저항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는 스타트업이 고객 중심의 사고로 무장하고, 그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고려대학교 기술 창업팀, ‘실버링(Silver Ring)’팀의 경쟁적 지위 차트 사례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대학원 학생들로 구성된 실버링팀은 점점 늘어나는 노령층을 위한 건강심리 관련 원스탑 서비스 솔루션을 기획했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노령층에 특화된 명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한 심리 상담 서비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방문 요양 서비스나 병원과의 연계를 통해 노인 만성질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표를 바탕으로 실버링팀은 실버세대와 그 가족을 잠재 고객층으로 확대하여,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들은 노령층의 건강과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며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실버링팀은 목표 고객인 노령층의 우선순위가 정서적 관리와 직접적인 건강 관리임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규모의 경쟁자를 분석하고 매핑했다. 분석 결과, 많은 경쟁자가 정서적 관리에 집중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심리적 안정을 위한 명상 콘텐츠나 심리 상담 서비스에 중점을 둔 경우가 많았지만, 이러한 서비스가 방문 요양이나 병원 연계로 확장되지는 않고 있었다.
반면, 실버링팀의 솔루션은 정서적 관리와 직접적 건강 관리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로 설계되었다. 이를 통해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쟁자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경쟁적 지위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그림 4).
스타트업의 성공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들어 경쟁자를 물리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목표 고객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기존 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데 핵심이 있다. 특히, 많은 스타트업이 간과하는 변화를 거부하는 고객은 미개척된 시장으로, 이들의 관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스타트업의 가장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결국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경쟁적 지위를 확고히 하며 목표 고객의 최우선순위에 부합하는 혁신을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변화를 주저하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이 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고객 중심의 사고와 새로운 시장 개척에 집중하는 스타트업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고, 시장에서 차별화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참조문헌
1. ‘스타트업 바이블’, Bill Aulet, 비즈니스북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