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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린터넷과 디지털 스타트업

이종구 박사의 스타트업 칼럼

by 이종구

디지털 자유의 붕괴, ‘스플린터넷’의 시대

‘스플린터넷(Splinternet)’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인터넷은 한때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위대한 연결망이었다. 국경의 제약도, 시간의 장벽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인터넷이 쪼개지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스플린터넷(Splinternet)’의 시대다.


‘스플린터넷’이란 단어는 ‘쪼개지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Splinter와 Internet의 합성어다. 본래 이 개념은 2001년 한 학자가 제시한,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병렬 인터넷의 기술적 가능성’을 의미하는 긍정적 개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단어는 오히려 인터넷의 자유로운 통합성을 위협하는 부정적인 현상을 묘사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말, 이른바 ‘닷컴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수많은 디지털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 공간에서 전례 없는 기회를 맞이했다. Amazon, Google, Facebook 같은 기업은 자유로운 글로벌 인터넷 환경을 기반으로 급속히 성장했고, 이들은 고부가가치의 디지털 경제를 선도하며 전 세계인의 데이터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10년 이상의 황금기. 디지털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고, 인터넷은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열쇠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자유로운 공간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각국 정부는 인터넷에 경계를 그어가기 시작했다. 사이버 보안, 개인정보 보호,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법적 규제를 마련하고, 기술적 장벽을 설치했다. 특히 2020년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ByteDance)의 대표 서비스인 틱톡(TikTok)에 대해 미국 내 금지를 선언한 사건은 ‘스플린터넷’이라는 단어가 실체를 가진 위협임을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틱톡이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내 모든 개인과 기업이 틱톡을 사용하는 것을 45일 이내에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틱톡은 법적 대응에 나섰고, 연방법원이 일부 명령을 유예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기존 명령을 철회하고, 틱톡을 포함한 글로벌 소셜 미디어의 보안 체계를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1.


스플린터넷의 흐름은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인터넷 공간 전체에 서서히 드리우는 그림자다. 자유롭게 연결되었던 디지털 세계는 이제 정치, 경제, 종교, 민족주의 등 다양한 이유로 나뉘기 시작했다. 각국은 데이터 주권을 주장하며 자국 내 인터넷 환경을 통제하고, 외부 서비스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


스플린터넷 시대, 디지털 스타트업은 어디로

그러면 더 구체적으로 스플린터넷이 생기게 된 동기는 무엇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디지털 스타트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와 관련하여 버지니아 공과대학의 교수인 막스 스톨캠프(Max Stallkamp) 교수는 앞서 언급한 틱톡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스플린터넷이 발생한 동기와 대응방안을 제시했다2.


스플린터넷의 4가지 동기

1. 개인 정보 및 데이터 보호(Privacy and Data Protection)

디지털 서비스의 핵심은 데이터다.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은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한다. 이에 각국 정부는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데이터 로컬라이제이션(Data Localization)’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GDPR(일반 데이터 보호 규칙)3은 대표적 사례로, 기업이 유럽 시민의 데이터를 처리할 경우 엄격한 규제를 따른다. 이는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위반 시 막대한 벌금이 부과되는 법적 의무다.


2. 세금 정책(Taxation)

인터넷 초기의 온라인 서비스들은 사이버 상품의 특성상 막대한 부가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회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디지털 거래에 대한 세금 부과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2021년부터 약 38개의 국가에서 디지털 세금을 부과하는 법규정을 수립했다. 특히 영국은 모든 디지털 서비스에 대하여 이익이 아닌 매출에 연계된 세금을 부과한다.


3. 사이버 검열(Censorship)

과거에는 일부 권위주의 국가의 전유물이었던 디지털 콘텐츠 검열이, 이제는 여러 자유국가로 점점 확장되는 모양새다. 대표적 예는 중국의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다. 이는 자국 내에서 외국 서비스의 접근을 차단할 뿐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적극적인 검열을 실시한다. 이러한 환경은 글로벌 디지털 기업에게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작용한다.


4.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

틱톡의 사례처럼 일부 자유 국가에서도 국가안보의 이유로 외국의 디지털 서비스를 일부 혹은 전체를 금지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들이 자칫 스파이 행위로 또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지정학적인 논쟁이 벌어지면서 전술적인 책략으로 상대 국가의 디지털 서비스를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2020년 인도가 100여 개 이상의 중국 애플리케이션을 금지했던 사례가 해당한다.

스플린터넷의 동기와 함의.png 스플린터넷의 동기와 디지털 스타트업의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한 함의 (출처: AIB Insight, 2021)


디지털 스타트업의 대응전략

이처럼 디지털 국경이 재건되는 상황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스타트업은 글로벌 확장이라는 꿈을 꿀 수 있을까? 막스 스톨캠프 교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전략을 제안한다


1. 현지 적응(Local Adaptation)

스타트업은 디지털 제품을 국가마다 적응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판매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콘텐츠나 UI를 현지화하는 수준을 넘어, 데이터 저장·수집 방식이나 수익모델 자체를 국가별 정책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이는 초기 비용뿐 아니라 지속적인 운영 부담도 동반한다. 예컨대 GDPR 준수를 위해 미국 기업들이 평균 수백만 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4.


2. 선별적 진입(Selective Entry)

더 이상 디지털 기업의 글로벌화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법적 규제나 비용 부담이 과도한 경우, 전략적으로 진입을 보류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GDPR 도입 직후, 유럽 내에서 미국 언론 사이트들의 접속이 막혔던 사례는 이를 보여주는 실례다.


3. 물리적인 현지 시장 진입(Physical Entry into Foreign Market)

데이터센터 설립, 현지인 고용, 합작 투자(Joint Venture) 등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기 위한 실질적 진입 전략이 요구된다. 일부 국가는 외국 기업에 현지 검열 기준을 따르도록 법적 의무를 부과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온라인 서비스 제공을 넘어서, 물리적 인프라와 운영의 재배치를 의미한다.


4. 불분명한 경계의 관리(Managing Fuzzy Boundaries)

스플린터넷의 현상으로 디지털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진출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다양한 시장의 이해관계를 잘 다루고 관리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장에 따라 여러 갈등적인 요소, 즉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가 충돌하고, 정치적 입장이 기술 기업에까지 요구되는 복잡한 장면이 펼쳐진다. 예를 들어, 글로벌 화상 서비스 기업인 줌(Zoom)은 중국 시장의 진출을 위해 콘텐츠 검열을 수용하겠다고 했다가 국제 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디지털 스타트업은 이처럼 상충하는 윤리와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이 요구된다.


어쨌든 오늘날 스플린터넷의 흐름이 거꾸로 흐를 일은 없을 것이다. 과거처럼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된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으로 회귀하는 일은 점점 더 요원하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면서 각국 정부는 디지털 공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 시스템의 차이와 문화적 가치의 다양성이 더해지면서, 지정학적 디지털 갈등은 한층 복잡하고 빈번해질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스플린터넷의 흐름 속에서, 최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새로운 관세 협정 체결을 주도하고 있다. 주된 초점은 자동차, 전자제품, 에너지, 농산물 등 미국이 비교열위에 있다고 판단되는 제조업 부문에 맞춰져 있다. 반면, 오히려 미국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 분야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미국의 관세 중심주의는 유럽연합 등 주요 경제권 국가들로부터 디지털 부문에 대한 보복성 대응을 불러오고 있다. EU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한 디지털세 부과, 플랫폼 규제, 콘텐츠 검열 의무화 등의 조치를 준비 중이며5, 이는 결과적으로 디지털 스타트업과 글로벌 테크 기업 모두에게 새로운 비용과 리스크를 전가시키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도 이제는 국제 무역의 정치적 대상이 되었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그것이 정치와 외교의 장에서 논의되는 순간, 규제와 과세, 심지어 퇴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건, 기술력만이 아니다. 변화하는 외교와 무역 환경 속에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정치 감각과 국제 전략이 요구되는 시대다.



참조문헌

1. en.wikipedia.org

2. After TikTok: International Business and the Splinternet’, Maximilian Stallkamp, 2021, AIB Insight

3.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4. Pulse Survey: US Companies ramping up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 budgets, 2018, PWC

5. www.eur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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