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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구 Jun 24. 2019

LGBT는 다양성의 문제일까?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해마다 6월 셋째 주가 되면 오라클(Oracle) 본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 레드우드쇼어의 12개 빌딩에서 LGBT(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ed) 커뮤니티, 즉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를 나타내는 성 소수자들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펄럭인다. 세계 최고의 IT 기업 중 하나인 오라클이 LGBT 커뮤니티의 ‘자긍심의 주Pride week’를 기념하면서 공식적으로 성 소수자 직원들을 포용하고 지원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당시 오라클의 직원이었던 필자에게는 참으로 낯선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상황을우리와 비교해서이렇게 한번상상해보자. 서울한 복판의 어느 대기업 본사 빌딩에 성 소수자들을 기념하는 무지개 깃발이 올라가 있다. 그것도 그 기업을 상징하는 깃발은 내려지고 말이다. 또한 그 옆의 거대한 전광판에는 성 소수자 직원들의 커밍아웃(Coming out)을 환영하는 홍보 영상과 사내 성 소수자 단체의 활동들이 방영된다. 그 다음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오라클은 1989년에 내부 LGBT 조직인 람다(Lambda)가 생겨난 이후, 홍보 활동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직원들의 커밍아웃을 도와주고 여러 행사들을 지원해 왔다. 2013년에 공식적인 람다의 리스트에는 약 200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었고 현재는 약 300여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까지 LGBT의 성적 지향의 문제, 동성애나 양성애의 문제는 성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또는 종교나 이데올로기에 따라 사람마다 매우 다른 렌즈를 통해 인지되어왔다. 성적 정체성은 성적 지향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신체적으로는 남성인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별이 여성이라면 이 사람의 성적 정체성은 여성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성적 정체성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의 문제를 놓고, 과학이나 종교, 여러 사조들을 들먹이며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가 후천적이어서 얼마든지 성적 지향을 이성애로 전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찬성자들은 동성애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개인의 성적 지향을 우리 사회가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약 21개 나라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 했지만, 어떤 나라는 동성애를 죄로 여기고 심지어 사형까지 선고하는 나라도 있다. 한편 2018년 미국의 중간 선거는 미국의 다양성에 커다란 진보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처음으로 110명 이상의 여성 상하원 의원들이 의회에 입성했다. 또한 이 중에서 두 명의 무슬림 여성 하원

의원도 탄생했다. 또한 콜로라도 주에서는 최초의 ‘커밍아웃 동성애자’ 주지사가 탄생했다. 유세 기간 동안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민주당 5선 하원의원인 재러드 폴리스(Jared Polis)가 선출되었다. 


수 년 전에 애플 CEO인 팀 쿡(Tim Cook)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공개했다. 그는 “내 성적 성향을 부인한 적은 없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며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우며 이는 신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 사실이 애플의 CEO로 일할 때 도움이 됐다고 주장했다. “성애자로 살면서 소수자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사실 애플의 CEO인 그가 성적취향을 공개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의 CEO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리면 성적 지향의 문제로 혼자 고민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생각했다. 애플 이사회 의장은 팀 쿡의 커밍아웃과 관련해 ‘용기 있는 일’이라며 “우리 이사회는 팀 쿡이 애플을 이끌고 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 대한민국의 사회는 성 소수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아마도 여전히 잔재하는 남성 중심의 사회와 사회 전반에 흐르는 폐쇄 문화적 요인, 종교적 문제 등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OECD 국가 중 동성애 관용수준은 최하위다.


2000년부터 매년 5,6월에 열리는 성소수자들의 축재인 퀴어 문화축제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서 열린다. 최근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와 연극이 발표되는 등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충돌과 갈등을 낳고 있다. 또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거나 각종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마이 페어 웨딩’의 김조광수 감독은 2012년 결혼식을 올린 뒤, 동성 결혼을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진행했다. 그는 이성애자처럼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릴 권리를 요구했다. 헌법 어디에도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지만 법원은 시대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기각했다. 성 소수자관련 차별금지법도 채택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받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가 성 소수자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다음의 이름들을 보라. 레오나르도 다빈치, 앤디 워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표트르 차이코프스키, 서머셋 몸, 제임스 볼드윈, 엘튼 존, 프레드 머큐리 등등 우리가 잘 아는 여러 분야의 천재 동성애자들이다. 이 밖에도 무수히 많은 동성애나 양성애 천재들이 예술과 사회,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보통 인구의 1%도 안 되는 성 소수자들에게서 이렇게 많은 천재들이 배출될 수 있는 것은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 소수자에 관하여 과학적으로 밝혀진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있다. 뇌 구조를 연구하는 UCLA의 로저 고르스키(Roger Gorski) 교수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뇌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뇌에는 우뇌와 좌뇌를 잇는 뇌량이라는 부분이 있고, 그 단면적은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13% 정도 넓다. 이 때문에 여성이 좌우의 뇌를 함께 사용해 다양한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이 남성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이 뇌량의 단면적이 여성보다 18%, 남성 이성애자보다는 34% 더 넓다고 한다. 따라서 남성 동성애자는 여성 이상으로 좌우의 뇌를 동시에 사용하고 그만큼 특별한 인지기능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어쨌든 이러한 성 소수자의 특성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게 인재의 요건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실제로 여러 글로벌 기업들은 성 소수자들이 떳떳하게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포용의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성 소수자들이 특별한 재능을 일으켜 기업의 가치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오라클의 경우도 기업 내 LGBT 단체나 외부 LGBT 커뮤니티를 장려하고 지원하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숨은 인재들을 찾아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실천들이 기업의 이미지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즉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 경영의 테마가 되어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성적 지향이 의도적이거나 비도덕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필자는 성 소수자의 문제를 정체성의 문제라고 본다. 그러기 때문에 인권차원에서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종이나 성별, 장애인 등과 같은 다양한 소수그룹을 인정하는 것처럼, LGBT 그룹을 포용하고 인정하면 성 소수자들은 조직 안에서 더욱 안정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동화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LGBT 문제와 같이 민감한 내용을 논의하기에 아직 이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회사 내에서 말 못할 고민으로 속앓이를 하는 천재 동성애자가 있을 수 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자질을 발휘하지 못하고 직장에서 이유 없이 쫓겨나는 인재들도 있다. 하지만 글로벌 선진화를 꿈꾸는 기업이라면 이제는 그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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