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고샅길을 걸으며

농촌 빈 집이 늘어간다

by 박종국

고향 고샅길을 걸으며

어제는 고향 고샅길을 걸었다. 오십여 가구 그다지 큰 동네는 아니어도 고만고만한 집들이 의좋게 모여 살았다. 한데 지금은 불과 스물 남짓, 그것도 노친네들만 남아 적적하기 이를 데 다. 우선 나부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떠나살아 고향은 바람처럼 휑하니 들렀다 빠져나간다. 동네 어귀 바람벽에 팔순의 노인에게 낯인사를 하여도 켕한 눈빛으로 마른 담배만 뻐꿈댄다. 고향이라도 자주 눈 마주치지 않으니 이제 먼먼 이웃이 되고 말았다. 단짝처럼 똬리를 텄던 어른들 모습도 성겼다. 요즘들어 부음이 너무 잦았다.

코찔찔이 시절 추억을 더듬어보려고 담장 흔적을 찾았다. 그렇지만, 어디 한 곳도 유년의 추억을 떠올릴 만한 데가 없다. 사오십년 전 기억은 또렷한데 그새 손 간 데 많아 마치 성형수술 잦은 여자 얼굴처럼 낯설다. 그런데도 유독 좁다란 골목, 그 오랜 고샅길만큼은 해묵은 탱자나무 울타리 드리운 채 그대로 남았다.

순간, 일전에 밴드에 남겼던 친구의 글귀가 살아서 꿈쩍 댔다. 토담집 담벼락을 만난 느낌을 참 잘 드러낸 말이다.

"담을 쌓다보면 둥근 돌도 필요하고, 모난 돌도 필요하고, 단단한 돌도 필요하고, 퍼슥한 썩돌도 필요하지요. 담을 쌓고보면 반듯하게 잘 쌓은 담도 나오고, 삐뚤삐뚤 어설프 보이는 담도 나오지요. 시간이 지나면 어떤 형태의 담도 다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지요. 삐뚤삐뚤하고 꼬불꼬불한 그 골목길이 그리워지네요."

한참을 담에 기대어 옛기억 사려보았다. 어쩌면 친구의 말처럼 해묵은 담벼락의 모습이 그렇게 닮았다. 크고 작은 돌들이 치열 고르듯이 이가 딱딱 맞고, 줄줄이 놓여진 이음새가 삐뚤빼뚤해도 단아하기 그지 없었다. 근데도 마을길을 넓히고, 똑같은 색깔무늬의 적벽돌로 쌓아올린 담장은 깔끔하기는 하나 정나미가 덜 했다.

그나저나 온기를 가진 집보다 듬성듬성 빈 집이 많은 고향동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쇠락하고는 말 폐허를 기약하는 듯 맘이 아렸다. 더군다나 아이들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는 말에 더 이상 기력을 차릴 동네의 몸체는 아니었다. 그 예전 골목골목마다 철부지 개구쟁이들 웃음소리 떠나지 않았고, 부랄배꼽친구들만해도 손가락 다 꼽고도 남았었다.

그 동안 우리 삶이 너무 도회지 등속에만 무게를 두고 산 결과다. 아무리 첨단사회가 편하고 좋다지만 농촌이 무너지면 다 죽는다. 건전한 성장을 이룬 선진국은 결코 농촌의 전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들은 농촌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다. 70% 이상의 식량자급율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에 비해 우리의 식량자급율은 불과 28%에 지나지 않는다. 밀은 전량 수입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더욱 개탄스러운 건 정부의 농본정책이다. 다른 물가는 날개 돋친 듯 천정부지로 올라가는데, 그 놈의 쌀값은 제 자리를 지키기는커녕 젬병이로 한 됫박에 겨우 사오천원이다. 실컷 농사지어봤자 쌀 팔아 똥 사먹기도 빠듯한 가격이다. 이러니 농촌을 떠나고 논배미마다 마른 한숨 가득하다.

농촌이 무너지면 입에 풀칠 할 쌀 다 수입해서 먹을까? 식량전쟁을 뼈저리게 겪을 일이 머잖았다. 농촌 빈 집이 늘어나는 속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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