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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관 Aug 25. 2016

최악의 하루, 하지만 안심하세요.

 <최악의 하루>에 관한 컴퓨터 폴더를 뒤지면 가장 오래된 메모 파일 이름이 <남산이야기>이다. 남산 산책로의 긴 산책길을 배경으로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은희의 이야기가 간단한 메모로 기록되어 있다. 나는 원래 <최악의 여자>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 써보고 싶은 제목이었다. 야네스 바르다의 옛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처럼 한시적인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떠올려 보았고 누구에겐가 최악의 여자로 몰리는 한 여자의 방황기를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여자는 하루 종일 걸을 것이다. 다양한 감정과 사정을 지니고 매번 다른 속도로 하루를 걷는 여자, 하지만 보이지 않는 길을 외롭게 걸어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했다. 내가 사는 동네를 서성 거리며 내용의 구상을 고민하다가 그녀의 시작을 내가 지나는 골목에서 해보자는 생각도 했다.  내 눈앞에 도구들을 이용해 큰 취재 없이 완결 지을 수 있는 영화의 내용을 구상했고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가 떠오른 후 어렵지 않게 구상을 끝냈다. <남산이야기>의 메모와 <최악의 여자>라는 제목으로 난 나흘 만에 시나리오 초고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에 시나리오의 내용들이 덧 대어 졌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일, 그 시작점에 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좋은 흐름이 함께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캐스팅이 어긋나고 투자자를 잃고 필요한 로케이션 지를 얻지 못하고 세상의 모든 불운이 달려드는 듯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모든 것을 믿지 못했다.  좌절 속에서 고단해했다. 그중 한 가지 다행은 불운 속에서 나는 나와 내 일에 끊임없는 의심이 들었다는 것이다. 낭만에 취할 수 없고 끝없는 질문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의심과 긴장은 나의 프로젝트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고민하게 했고 나쁜 운이 빠져나간 자리에 행운이 찾아드는 시기가 왔다. 어긋난 캐스팅은 좋은 인연을 만들어주고 불운 속에서 우정과 사람을 찾았고 필요한 로케이션지가 돌아왔다. 애초에 모든 것이 필요한 자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준비하던 작업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내가 원하는 거리에 원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원하는 햇살 아래서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 좋은 사람들이 땀을 흘려줬다. 내가 마냥 근심으로 서성 거리던 골목에서 카메라의 눈으로 배우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오늘 개봉했다. 영화는 그 사이 <최악의 하루>로 바뀌었다. 개봉했다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나는 아직 첫 상영이 있기 전, 이른 오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며칠 동안 몇 겹의 파도가 마음을 쓸어내렸고 옅은 흥분에 체온이 약간 올라간 기분이 든다. 이 끝이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행복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끝에서 다른 인연을 꿈꾸는 긍정이 다시 돌아왔음을, 행운을 다시 믿게 된 것에 안도한다. 관객들도 나의 영화에서 그런 안도를 느끼기를 바란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내 영화는 최악의 여자도, 최악의 하루도 없다. 어느 평범한 여자의 지나가 버릴 하루가 있을 뿐임으로 그녀의 고단한 하루를 안심하고 지켜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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