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종규 Feb 15. 2023

[6] 주 住 Space

순환경제와 건축 산업

공유오피스로 오기 전에 광화문 고층빌딩에 있던 큰 사무실을 떠나며 멀쩡히 쓰던 물건을 처분할 때 고민이 많았다. 이웃 사무실이 이사하며 버리는 걸 얻어 썼던 책장과 천갈이해 가며 쓰던 의자는 구청 재활용센터에서 헐값에 가져가니 수월했다. 그러나 전자기기를 중고로 팔 때는 알맞은 구매자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많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폐가구 원목으로 만든 책상은 무겁고 커서 원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원래 가구를 만들어 준 회사에 연락해서 다시 가져가 잘 사용해 달라 부탁했다. 비싸게 주고 샀던 터라 돈은 아까웠지만, 버리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모두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그간 잘 썼으니까.


건물도 참 처분하기 어렵다. 버릴 수가 없다. 사용자가 영구적이거나 일시적인 소유를 하다가 다른 사용자에게 넘길 때는 부동산 시장 논리가 적용된다. 잘 지어 올리다가 유치권행사 현수막을 걸고 멈춰버린 공사현장을 보기도 하고, 공사를 서두른 탓에 무너져 큰 피해를 남기는 건물도 있다. 잘 쓰는 건물은 어떤 건물일까?


버림 없도록 만들고, 최대한 잘 쓰고, 자연을 재생. 순환경제 3원칙을 바탕으로 EMF는 아래 다섯 가지를 부동산 시장이 놓치고 있는 가치로 정리했다. First steps towards a circular built environment라는 Arup과 EMF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1. 안 쓰는 공간의 잠재력을 유연한 공간으로

건물주가 안정적으로 임대료를 받는 목적이기에 비어있는 시간이 있는 공간이 있다. 건물 로비에 팝업스토어를 열거나 회의실 공간에 시간대를 달리 한 강의공간을 활용하는 등의 다용도 활용을 위한 유연한 설계를 제안한다.

2. 시장 상황과 지역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탄력적인 용도

건물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부동산 가치평가에 따라 철거되는 상황이 있다. 용도를 바꿔서라도 건물의 쓰임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은 건물과 지역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

3. 이동이 가능한 모듈식 건물로 건축 부지 활용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로 부동산 개발 논리에 따라 이미 생태는 망가졌으나 식량을 생산하는 농지도 아니면서 활용하지 않는 땅이 곳곳에 있다. 단기 사용을 목적으로 한 임시 건물을 지어 활용할 수 있다.

4. 해체했을 때 나오는 자재의 거래 가치

건물은 해체될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튼튼하게 짓는다. 건물에 들어간 자재를 아직 충분히 쓸만할 때 재사용을 할 수 있고, 재사용하는 자재로 건축할 때 혜택을 주는 것이 더 적은 자원을 활용하는 방향이다.

5. 건물의 생애주기 전반을 공간 서비스로 보는 관점

공사 비용과 운영 비용을 분리하여 생각하다 보니 전체 비용은 되려 손실을 본다. 건물의 내구성과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설계가 주요하다.


보고서에 이어 EMF는 Arup과 함께 Circular Buildings Toolkit을 공개했다.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순환경제 개념을 바탕으로 한 프레임워크, 전략, 측정 도구, 적용 사례를 공유하고 있으며 본인의 건축 프로젝트도 등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꼽는 실제 사례 중에는 건축 자재를 검토하는 자재 여권 제도를 적용한 시드니, 대여한 자재로 임시 건축물 짓는 네덜란드, 조립식 목재 구조를 적용한 런던의 사례와 더불어 한국의 아모레 퍼시픽 용산 사옥에 적용된 모듈식 조명 시스템 등이 있다.


창의력을 담은 디자인은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칠 수 있다. 자재를 덜 쓰고, 다시 쓸 생각을 하는 순환 경제의 원칙으로 방향성을 잡아 창의성을 모은다면 전환의 속도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STEP2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으로 운영하는 NEST (Next Evolution in Sustainable Building Technologies)의 실험적인 건축물 STEP2는 순환경제 원칙을 따르는 실제 건물을 짓고 있다.

척추 모양의 나선형 계단 
고성능 섬유강화 콘크리트를 3D 프린팅 설계를 이용해 얇고 복잡한 구조의 모듈식 계단을 만들 수 있는데, 최소한의 자재를 투입하고도 튼튼한 건물구조를 디자인할 수 있다.

갈비뼈 모양의 지붕/바닥 설계
자유도가 높게 개발된 디지털 설계도구를 활용해 만드는 건물의 지붕/바닥 슬라브 역시 재료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흡음과 단열에 훌륭한 성능을 발휘한다.

모듈형 벽체
건물의 에너지 효율과 편의성을 고려해 설계한 모듈형 벽체는 건물 이용 중에도 교체가 가능한 모듈형이다. 유리창을 비롯한 외벽자재에는 공기의 순환과 자연광을 활용하는 기술이 적용되어 건물의 에너지 수요를 낮춘다.


단층 농가주택 건축이 끝나고 생긴 스티로폼과 벽돌 조각을 뒷마당에 파묻는 공사현장을 동네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마당에 나무를 심을 건지 모르겠지만 그 나무는 잘 자랄지 궁금했다. 땅의 표면 위에 있는 것만 가치 있는 것일까? 숲을 밀어내기는 쉽지만 다시 만들기는 어렵다. 인류의 시간이 좀 더 흘러 기후가 더 변화하여 탄소포집과 지하수 저장 능력이 최고 자산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온다면 어느 국가가 가장 훌륭한 건설 정책을 설계한 나라로 평가될까?


주거 공간을 설계하는 초기단계부터 순환경제의 원칙을 적용하고 한정된 자원인 땅의 최대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에 집중하는 정책과 기술 그리고 자본이 협력하는 사례의 건물이 곳곳에서 올라오길 바라본다. 그게 아니라면, 자연 자본을 까먹지 말고 숲을 보존하여 탄소중립과 생물다양성에 장기투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가뜩이나 깨끗한 물이 부족해서 난리인데 콘크리트로 덮은 땅 위에는 비가 내려도 지하수로 흘러갈 수가 없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7] 발자국, 추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