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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Jun 06. 2024

[20일째][6월6일] 자기 다짐

어제는 여러 가지 일로 바빴다. 동시다발적으로 밀려오는 일을 처리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것은 다시 흩어졌다가, 합쳐지더니, 곧이어 어떤 형태를 이루면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의식보다 빠르게 두뇌 회전이 진행된다. 전에 없던 집중력이 생기고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 갑자기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요즘은 순간마다 크고 작은 자극을 느낀다. 100일 글쓰기와 음악 동호회를 시작으로 많은 만남과 경험, 인풋과 아웃풋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생긴 결과가 아닐까? 글짓기, 독립 출판, 인터뷰, 굿즈 제작, 커뮤니티, 팟캐스트, 유튜브 등,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별로 안 해봤다고 벌써 떨 필요 없다.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니, 엄청나게 쉽다. 어느 정도 경험이 있고, 재료도 이미 갖췄다. 남은 것은 잘 조합해서 실행만 하면 된다.  


6~8년 전에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이 있다. 모든 시간이 기대와 흥분으로 범벅이던 나날들. 그때 했던 것을 지금까지 계속했었다면 뭔가 하나는 이뤘을 텐데. 비슷할 때 시작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잘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런 후회를 하곤 한다. 이제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지. 한편, 지금 이 감각이 어느 순간 흐지부지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되게 유사하다. 나는 일을 하면서 몇 개의 외부 활동을 병행했다. 언제나 그랬다. 그런데 그때는 왜 흐지부지되었는가. 


그때의 실패 원인을 꼽아 보면 답은 나온다. 멀리 있는 환상을 쫓기만 할 뿐 나한테 충실하지 못했다. 나는 직장을 왔다리 갔다리 할 뿐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외부 활동에 목을 매었다. 회사에서 나는 하루 종일 외부 활동을 생각만 하느라 실수가 잦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외부 활동에서는 자아실현에 가까울 정도로 행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행복해도 무일푼이었다. 그러니 회사에 다녀야 했다. 애정이 생길 리 없다. 회사는 그저 돈을 벌려고 다니는 곳이다. 그러나 고용된 입장에서는 월급 값만큼 일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어느 때는 그 이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회사가 존속해야 나도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직장인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철없는 시절이었다.


나는 어느 한 곳에 속할 수 없었고, 속하길 원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회사에서의 나와 밖에서 보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밖에서 아무리 자아실현을 해봤자, 회사에서는 일 못하는 직원, 즉, 애물단지였다. 순간순간이 외줄타기였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애초에 학벌과 능력이 떨어지니 작은 회사에 다닐 수밖에 없고, 월급은 늘 고만고만하고, 경력으로 내세울 만한 사항도 갖추질 못해, 나이를 먹고도 전혀 성장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 노력을 포기했다. 회사에 대한 기대를 접고 외부 활동에서 돈 벌 방법을 궁리했다. 그래서 그것이 성공했느냐, 하면 그렇게 되지 않았다. 회사 일을 못 하는 녀석이 외부 활동을 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초반에는 어찌저찌 일을 받아 기한 내에 처리하긴 했다. 그런데 회사가 점차 바빠지자 일 처리가 조금씩 늦어졌고, 나중에는 그것을 핑계 수단으로 만들어 미루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 일이 하나둘 늘어났다. 핑계가 발전되면 거짓말이 되고,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든다. 결국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로 커지자 아예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최악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고작 돈을 조금 벌고 명함 한 줄 넣을 이력이 생겼다, 끝. 


오랜만에 흑역사(黒歴史)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창피할 따름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여전히 실수하고 부족한 직원이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 재미있는 것을 많이 하고 싶다. 이제는 돈 좀 벌어 보자. 그런 다짐을 기억하고자 이 글을 여기 남긴다.


- 200자 원고지: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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