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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Jun 08. 2024

[22일째][6월8일] 천변길

하루 종일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난 천변길을 걸었다. 바람은 적당히 불었고 길을 걷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걷기 좋았다. 나와 애인은 중간중간 비를 피하다 쉬면서 나란히 걸었다. 여기저기 보고 듣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미 반나절은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러다 한 중년 부부가 우리 곁을 스쳐 앞서갔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긴 했지만 길 양 끝에 서서 앞만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이 되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거 봐봐. 저 여자분이 맨 가방이 무슨 브랜드인 것 같아?”

“모르겠는데.”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한때 유행했던 키플링 가방 있잖아. 그런 가방 같은데. 아, 아닐 수도 있겠다. 아무튼 고급 브랜드까진 아니어도 꽤 아끼는 가방처럼 보인단 말이지. 되게 깨끗해 보이고, 그런데 옷은 그냥 대충 입으셨단 말이야. 모자와 바지, 가방은 검정색인데, 위에 티셔츠는 흰색에 팔 있는 데는 색깔이 분홍이야. 뭔가 깔맞춤도 너무 안 맞고, 이상해. 보니까 이렇게 산책하거나 여행하는데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야.”

“하하, 그러네.”

“반면, 옆에 있는 아저씨를 보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올블랙이고 배낭까지 완전 군장을 했어. 저분은 등산이나 여행 좀 다녀본 것 같아. 그런데 지금 저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는데, 왜 이렇게 떨어져서 걷고 있냐고. 우리 앞을 지나쳐서 계속 걸으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저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동안 둘이 떨어져서 걷는데, 어떻게 서로 한마디 말도 안 하고 있네.”

“하하하.”

“이상하지, 되게 이상하지? 아마 저 남편분이 억지로 가자고 해서 나왔을 것 같아, 저 여자분은 되게 나가기 싫었을 것 같고. 그래도 나왔으니 대충 멋을 부리긴 했는데, 하필이면 가방하고 옷이 너무 안 어울리는 거고. 이런 여행 같은 거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야. 낮에 비도 많이 왔잖아. 근데 저 아저씨는 좋다고 걷고 있어, 이런 거에 익숙한 사람이긴 한데. 아내 생각은 안 하는 사람 같아. 일단 앞만 걷고 보는 거야. 지금도 말 아예 안 하지. 둘이 떨어져서 말 한마디 안 하네. 어떻게 저렇게 갈 수가 있지.”

“아마 대화를 하긴 하겠지. 해도 돈 얘기나 애들 얘기, 부동산 얘기 같은 거,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사는가 봐.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는 계속 대화하며 살고 싶어.“

“나도 그래.”


대화를 하는 동안 중년 부부는 우리 앞에서 멀어져 갔다. 잠시 뒤 조깅하는 3명의 청년들, 어떤 대화를 깊게 하는 모녀가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쳤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다. 천변길은 평화로웠다.


- 200자 원고지: 7.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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