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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Jun 13. 2024

[27일째][6월13일] 한우 불고기

뭘 또 써야 하나. 마감을 앞두고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봤다. 100일 글쓰기가 한 달쯤 되어가니 슬슬 힘에 부친다. 별로 쓰고 싶지는 않은 이야기지만, 하는 수 없이 오늘 있었던 일을 끄집어내야겠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장을 좀 볼까 하고 홈플러스에 갔다. 필요했던 베이킹 소다를 집어 카트에 넣었다. 슬쩍 지나가다 필요했던 바퀴벌레 퇴치용 에프킬라가 보이길래 그것도 집었다. 대충 살 것들은 다 샀고, 이제 오늘 저녁 찬거리로 먹을 메인 요리용 재료만 사면 돼서 정육 코너를 돌았다. 마침, 마감 세일 이벤트로 한우 불고기를 세일한다고 청년 둘이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며 안내 방송을 하고 있었다. 


마감 세일치고는 줄이 별로 안 서 있길래 그냥 서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가 되자 청년은 한우 불고기 5kg을 특별한 가격으로 해줄 수 있고, 최대 7kg까지 구입할 수 있는데 그러면 더 할인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1인 가구니까 그냥 5kg만 달라고 했다. 청년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큰 비닐 팩에 양념 된 한우불고기를 양껏 가득 담고는, 거기에 또 하나를 더 담아 웃는 얼굴로 내게 건넸다. 양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아서 조금 놀랐지만 청년이 워낙 정성껏 포장을 해서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계산대에 간 나는 더 놀라고 말았다. 한우 불고기만 19만 원어치가 나온 것이다. 왠지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고기양이 너무 많아 에코백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아, 미친 이거 취소할까. 한우 불고기가 이렇게 비싼 거였어? 문득 본가에 살 때 엄마가 나하고 동생들 먹이려고 마트에서 한우 불고기를 종종 사다 구워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어서 조금 전에 고기를 열심히 담아준 청년의 웃는 얼굴이 생각이 났다. 지금쯤 매상 올렸다고 좋아하겠지. 아오……. 차마 취소할 수가 없었다. 19만 원짜리 한우 불고기, 까짓거 사고 말지. 집에 가서 배 터지게 먹어야지. 이젠 나도 돈 버는 어엿한 직장인이라구.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이를 먹어도 아직도 세상 물정 모르는 나란 사람, 한심한 사람, 오늘도 인생을 몸소 배우고 있는 중이다. 열심히 살자. 돈 많이 벌자, 하고 생각하면서 카드 결제 3개월 할부를 눌렀다. 


- 200자 원고지: 5.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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