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를 약간 넘긴 시간. 점심을 먹고 쉬는 중. 모처럼 아무 일정이 없는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 낮잠을 잤어야 했는데 지금 자기에는 살짝 애매한 시간이니 오늘 미션이나 해야겠다. 마침, 낮잠 얘기가 나왔으니 어제 본 '잠'의 공연 이야기나 해보자.
잠은 1997년인지, 1998년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그 시기에 결성된 팀으로 홍대 인디밴드가 태동하던 때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유명 밴드가 된 자우림이 1997년에 결성되었다고 하니, 대략 어느 시기였는지 가늠이 될 것이다. 잠의 음악 장르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니아층이 좋아하는 슈게이징, 노이즈 락 계통의 음악을 선보였다. 일렉기타의 연주를 증폭시켜서 생기는 소음을 통해 잔잔하면서 반복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면서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를 느끼는 음악을 들려준다. 명확히 가사를 전달하기보다는, 청자로 하여금 각자 알아서 생각하게 만드는 문학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드시 소리를 크게 키워서 들어야 함) 그런 잠은 이쪽 계통 취향인 리스너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알려진 밴드였으나, 2000년대 초반에 낸 정규 3집을 끝으로 무기한 잠수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소문으로만 알려진, 음악 좀 들었다는 형들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해줄 때 가끔 언급되는, 잠은 그런 환상의 밴드였다. 그랬던 잠은 작년에 갑자기 재결성 소식을 알리게 된다. 스트리밍 사이트에 옛날 음원이 전부 올라오고, 새롭게 녹음한 신곡도 하나둘 발표되면서 드디어 잠의 실체를 들을 수가 있게 되었다. 나는 이쯤 제대로 잠을 들을 수 있었는데 내 취향하고도 잘 맞아떨어졌다. 아마 활동 당시에 알았다면 엄청난 팬이 되었을 것 같았다.
어제 잠의 단독공연은 20년 만에 열린 공연이었다. 총 2시간가량이었고 1부와 2부로 나눠서 진행되었다. 잠은 2000년대 초 발매한 곡들부터, 2023년 재결성해서 발표한 곡들과 곧 나올 4집 신곡도 알차게 들려주었다. 처음 공연 시작할 때는 잠과 관객이 서로가 낯설어하는 시선으로 마주 보았던 것 같았으나, 끝날 때쯤 되어서는 모두가 함께 떼창을 하면서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잠의 음악은 옛날 홍대 인디음악 그 자체였지만 2024년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었다. 잠을 즐기는 관객들의 얼굴은 대체로 젊었다. 아마도 잠이 데뷔했을 때거나 한창 활동하던 시절 태어난 이들 같았다. 다들 잠을 어떻게 알아서 왔을까? 최근 페스티벌 문화가 떠오르면서 밴드 음악도 다시 주목을 받게 된 영향일까? 이것 또한,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이번 잠 단독공연은 클럽 빵 30주년 공연의 일환으로 진행된 공연이었다. 가게를 열어도 겨우 1년 이상 버티기 힘든 시대에 클럽을 30년 동안이나 유지할 수 있다니, 생각할수록 경이로웠다. 평소 회사 근처라서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무심하게 지나친 장소였는데 어제만큼은 정말로 크고 단단한 공간이었음을 깨달았다. 클럽 빵 같은 곳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홍대가 홍대일 수 있는 것이다. 계속 홍대 인디밴드 씬의 인큐베이터로서 이대로 자리 잡고 있어 주었으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종종 찾아가서 미약하게나마 힘이 되어줘야지, 그나저나 한 가지 일을 30년, 20년 동안 할 수 있다니, 말이 안될 정도로 대단해,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여러 가지 마음을 품으며 나만의 토요일 밤을 보냈다.
- 200자 원고지: 8.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