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은 상사께서 차량 시위를 나가는 날입니다. 오늘도 출근 시간 15분 전에 상사의 전화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디냐?"
"저 지금 출근 중인데요."
"그러면 이따가 차량 시위 나가니까 깃발을 설치해라."
"알겠습니다."
사무실 출근하자마자 투명 박스 테이프를 들고나와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 갑니다. 이제 회사 법인 차량은 시위 차량으로 변신할 시간입니다. 뒷 좌석 창문을 끝까지 내리고, 창틀 안으로 깃발을 집어넣습니다. 그다음 깃대를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습니다. 마무리로 툭툭 건드려서 제대로 고정이 되었는지 확인합니다. 이제 창문을 끝까지 올리면 깃대가 완전히 고정되면서 깃발 설치가 끝납니다. 붉은색 깃발에는 "사법부는 각성하라" "XXX 재판지연 규탄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깃발 설치를 끝나면 상사께서는 오전에 서초동 법원에 가서 다른 차들과 함께 주변을 한두 바퀴 돌면서 차량 시위를 하십니다.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시위 차량 수십 대가 법원대로 한복판을 휘젓고 다니는 광경이라니 실로 장관이겠지요. 저번에는 비가 장대처럼 내렸는데도 거르지 않고 다녀오셨습니다. 시위를 시작하신 이래로 제가 알기로는 한 번도 쉰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점심 전에 모든 시위가 종료되면 상사께서는 회사로 복귀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점심시간을 마치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깃발을 떼어냅니다. 어쩌다 보니 화요일마다 고정된 루틴이 돼버렸구요.
이것 외에도 상사께서는 저에게 여러 가지 일을 주문하십니다. 모 정당 해산 촉구 온라인 청원, 모 정치인 비판 1인 시위 피켓 문구 수정, 찌라시 만들기, 지지 후보 선거사무실 연락, 행사장 동행, 등, 나이가 많으셔서 혼자 하시기에 힘든 정치활동을 제법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제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는군요.
처음에는 이런 짓 하나하나 하라고 할 때마다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제는 익숙해져서 하라고 하면 그냥 군말 없이 합니다. 그래야 월급을 받을 수가 있거든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데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예전 직장의 상사는 투표 때 자기가 미는 정당을 찍으라고 강요했고, 제 정치 성향을 꼬치꼬치 캐물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죠. 그냥 시키시는 일만 잘하면 별일 없이 지나갑니다. 가끔 프락치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저는 현재 어떤 진영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이 회사에 있는 동안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분명 출판사 직원으로 입사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신념을 관철하는 것은 퇴사 후 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세상에서 밥벌이가 가장 중요합니다.
- 200자 원고지: 7.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