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말한 대로 여름은 덥고 습하고 벌레가 많아서 싫어한다. 하지만 딱 하나 좋은 점은 락 페스티벌이 열리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야외에 있어서 햇볕에 그을리고 더위와 습도 때문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고생하지만, 멋진 밴드들의 좋은 공연을 보면서 뛰놀고 있으면 세상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게다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해외 유명 아티스트가 눈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극락이 따로 없다. 그 한순간을 위해 오늘도 회사를 꾹 참고 다니면서 월급을 번다.
이틀 전 일요일에는 '해브 어 나이스 트립'이라는 이름의 페스티벌에 갔다 왔다. 장소가 고양시 일산 킨텍스여서 좀 멀었지만, 꼭 보고 싶었던 해외 아티스트가 오기 때문에 놓치기 싫었다. 어쩌다 보니 나한테는 이번 여름 첫 락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으로 본 밴드는 설(SURL)이었다. 그간 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고 공연도 워낙 잘 하기로 유명해서, 당연히 본 무대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아는 사람만 아는 노잼 서바이벌 방송이었던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에 나와서 홀로 유잼을 담당해서인지, 뭘 해도 잘하고 귀엽게 보였다.
설을 본 뒤, 밥 먹고 조금 쉬다가 유다빈밴드를 봤다. 마침, 마지막 곡을 부를 차례였다. 유다빈은 '케이팝스타' 출신이라 그런지 역시 노래는 기깔나게 잘 불렀다. 아직 젊으니 앞으로 계속 성장하겠지. 그런데 음악 자체가 워낙 대중 친화적인 스타일이라, 이 밴드만의 큰 한방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원래 오기로 했다가 취소가 된 레미 울프(Remi Wolf)의 자리를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유다빈밴드를 보고서는 다음 공연을 안 보고 그 자리에서 계속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드디어 올웨이즈(Alvvay) 차례. 데뷔 앨범이 나왔던 2014년 때부터 좋아했으니 거의 10년을 기다렸던 것이다. 등장하고서 첫 곡부터 좋았으나, 문제는 공연장 음향이 너무 안 좋아서 기타 소리가 거의 들리질 않았다. 기타 사운드로 특유의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올웨이즈 음악에서 기타가 안 들리다니, 좀처럼 몰입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그 사이로 보컬 몰리 랭킹(Molly Rankin)의 노래가 빈 공간을 가득 채워 주었다. 몰리의 보컬 실력은 정말 대단했는데, 멘트도 거의 없이 연이어 노래하는데도 목소리가 전혀 갈라지지 않고 쫙쫙 고음을 뻗어내는 것이었다. 마치 보컬이 하는 차력쇼를 보는 듯했달까. 덕분에 마지막 곡까지 즐길 수 있었다. 100퍼센트 만족은 못 하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했던 올웨이즈를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삼파(Sampha)는 7년전에 내한했을 때 한번 봤었다. 블랙 뮤직 계통에 타악기를 주로 사용하는 음악 정도로 기억한다. 사실 너무 오래전이라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아서 기대도 거의 하지 않은 채 공연을 보았다. 그런데 웬걸, 시작부터 완전 아트였다. 삼파는 첫 등장부터 물 흐르듯 노래하다가 악기를 연주했고, 관객 앞에 서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다가, 세션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었다. 무대 구성도 특이했는데 4명의 세션이 삼파를 둘러싼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서, 마치 삼파를 지휘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보는 것 같았다. 삼파가 음 하나하나 누르거나, 짧게 노래하기만 해도 귀가 황홀해졌다. 음향 상태가 너무 좋은데? 앞에 올웨이즈를 본 장소와 다르게, 삼파의 무대 음향 세팅이 잘 되어 있는 듯하다. 아무튼 1시간 가량 훌륭한 무대를 감상할 수 있었다. 7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너무 좋았다. 삼파의 무대만으로도 충분히 티켓값을 하는 공연이었다.
헤드라이너인 킹 크룰(King Krule)의 무대는 그저 그랬다. 올웨이즈가 공연했던 장소와 같은 장소라서 음향이 별로였고 무엇보다 음악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음원으로 들었을 때는 괜찮긴 하지만, 문제는 킹 크룰은 싱어송라이터 음악을 하기 때문에 가사가 중요한데,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가사가 잘 안 들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와 퍼포먼스는 멋있어 보였지만, 사운드적으로도 비는 부분이 많은 음악이라 노잼이었다. 초중반부를 조금 보다가 맥주나 먹으러 나갔다.
여기까지가 해브 어 나이스 트립에서 본 공연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페스티벌에 대해 느끼는 게 많아서, 전체적인 장단점을 공연보다 훨씬 많이 쓸 수 있는데, 슬슬 마감 시간이 다가오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이번 주말에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간다. 좋은 비교가 될 것 같다.
- 200자 원고지: 11.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