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한국형 SF 로맨스, 그러나 아름다운 그림에 비해 아쉬운 서사
2025.06.16. 당시에 썼던 글입니다.
https://cafe.naver.com/justmusicccccccc/4194
넷플릭스에서 새로운 <이 별에 필요한>이라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기대했습니다. 극장에서 <퇴마록>을 본 지 얼마 안되어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올라간 시점이기도 했는데, (예고편만 봤을 때) 무엇보다 화풍이 흔한 스타일이 아닌 독자적으로 개성이 강한 편이라 마음에 들었고, 배경이 되는 2050년대의 서울 풍경과 분위기, 색감 등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게다가 장르가 연애물이라고 하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아련한 로맨스일 것 같아 더 큰 기대를 품었습니다.
https://youtu.be/-_-2qKhxzjo?si=QqzZ1RrKBdeW2CG6
기본적인 줄거리는 NASA에서 일하는 연구원 '난영'과 을지로 전파사에서 일하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접은 인디 뮤지션 '제이' 간의 러브스토리입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첫 만남부터 너무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식 전개가 이어졌습니다.
처음 보는 남녀가 길 가다가 어이쿠 하면서 부딪히며 만나는 것부터... '이게 맞나?' 싶은 장면들이 어처구니 이어집니다. 우리가 로맨스물을 보게 될 때 기대하게 되는 어떤 설렘이나 캐미 터지는 장면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직업과 자라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썸타고 연애를 한다는 내용을.... 이건 뭐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쉽게 이어지더라고요. 마치 연애 한번 안 해본 십대 혹은 이십대가 좋아할만한 연애사를 그려놓은 것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의 연애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아 감정이입이 쉽지 않았습니다.
'난영'의 서사는 기본 뼈대를 이루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갑자기 중반부터 '제이' 쪽의 서사가 과하게 들어가는데, 저는 오히려 그것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첫 인상부터 캐릭터로서 큰 매력을 못 느끼기도 했고, 보면 볼 수록 '왜 이렇게까지 설정을 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 장면의 연출은 확실히 멋있게 마무리되었지만, 이미 다른 애니메이션(시간과 공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 혹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초기작인 <별의 목소리>와 되게 유사한 설정이고, 영화적으로는 <인터스텔라> 등과 비슷합니다)에서도 본 듯한 장면이라 그다지 신선하거나 감동적이지 않았습니다.
전문성우를 쓰지 않았다고 성우팬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은데, 전문성우를 쓰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홍보 때문이겠죠. 이 점에 대해 할말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말이 많지도 않습니다.
생각보다 배우 김태리와 홍경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캐릭터하고 어울리기도 하고 최선을 다한게 보였네요. 할말은 그게 끝이고요. (오히려 일본과 미국 음성으로 들을 때가 더 좋다는 평이더군요. 특히 미국 음성에 <데블스플랜: 데스룸>에 출연한 저스틴 H. 민이 참가한다고 하니 괜히 반갑더군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음악 산업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과학과 문명이 엄청나게 발달한 세계관 속에서, 음악 산업만은 별다른 발전이 없다는 점에서 (음악 소비자로서) 굉장히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첨단 과학 문명과 예술의 대비를 의도한 연출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구식이고 현실성 없는 모습이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2050년대에 여전히 어쿠스틱 기타로 음악을 만들고 있고(물론 AR기술로 밴드 음악을 만드는 장면이 있긴 한데 되게 빠르게 지나갑니다), 공연도 전통적인 오프라인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화상 통화나 AR 기술이 일상화된 세상인데, 음악의 모습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특히 마지막에 '제이'가 노들섬 야외무대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하는 장면은, '왜 아무런 첨단 기술이나 효과의 흔적이 없지?' 하는 의문이 들게 했습니다. (규모와 자본에서 차이가 난다고는 해도, 현재 미국의 라스베가스 스피어를 생각해 보자구요. 아니면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2025년의 콜드플레이 내한 콘서트와 비교해 봐도, 그렇습니다) 우주 반대편에서는 '난영'이 열심히 화성을 탐사하는 중인데 말이죠. 너무 고전적인 방식이어서 오히려 몰입이 깨졌습니다. (그렇다고 '제이'의 노래가 엄청 좋냐면 그 정도까진 아니었고요)
https://youtu.be/aZtZNW6P97E?si=2v8KObNUogjdxqcM
결론적으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세계관은 아름답고 그림체는 매력적이지만, 스토리와 설정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도 한국 애니메이션이니, 앞으로 더 발전하길 바라며 응원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