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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후기

문학의 청각적 확장, 그런데 이용 방식은 조금 아쉬워

by 김종규

2025.06.30. 당시에 썼던 글입니다.

https://cafe.naver.com/justmusicccccccc/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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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학계와 오디오북 플랫폼에서 첫 여름, 완주가 큰 주목을 받고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접하게 되었습니다. 배우 박정민이 설립한 출판사 무제에서 기획한 듣는 소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실물 도서보다 오디오북이 먼저 발매된 독특한 사례라는 점이 특이한데요. 이 작품은 단순한 오디오북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위한 듣는 소설이라는 기획 의도 아래 탄생했습니다. 특히 박정민의 개인적인 배경(시각장애가 있는 아버지께 책을 들려드리고 싶다, 라는)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출간 당시부터 따뜻한 관심을 받았는데요.

이러한 배경은 단순히 콘텐츠를 유통하는 것을 넘어, 접근성과 포용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민한 기획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듣는 경험에 최적화된 스토리텔링 구조는 문학을 감상하는 또 다른 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https://youtu.be/7N1FnsnfkbA?si=avKsiVpUYN4ZrawS

짧게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주인공 손열매는 직업이 성우입니다. 슬럼프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중, 돈을 떼먹고 도망간 룸메이트 고수미를 쫓아 그의 고향인 완평군 완주 마을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게 됩니다.

줄거리만 보면 일상적인 성장 서사처럼 보이지만, 김금희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며, 독자가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감정의 미세한 결부터 인물 간의 온도 차까지 촘촘하게 그려내는데, 서사의 리듬을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유지합니다.

이야기 곳곳에는 비디오가게, 고전 영화, 라디오 방송, 카세트테이프처럼 이제는 점점 보기 어려워진 아날로그 매체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매체들은 단순한 배경 설정을 넘어, 인물들이 삶의 방향을 다시 찾고 마음을 회복해나가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 속 아련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들며, 과거의 추억이 현재의 위로로 이어지는 정서적 울림을 전하구요.

오디오북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고민시, 염정화, 박준면, 최양락 등 명품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말도 안되는 섭외 라인업 배경에는 박정민의 인맥과 배우들의 재능기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와 풍부한 감정 표현은 물론이고, 장면 전환에 따라 적절히 삽입된 효과음과 배경 음악, 그리고 작품 후반 삽입된 OST까지 모두 조화를 이루며 완벽한 몰입도를 높여줍니다.

이야기가 끝난 뒤, 박정민 대표가 제작자로서 직접 들려주는 짧은 메시지는 작품 전체에 담긴 기획의 진정성을 느끼게 해주며, 개인적 감동을 더합니다. 한 편의 라디오 드라마 혹은 영화 같은 감각적인 구성 덕분에 단순히 책을 듣는 경험 이상을 선사한다고 해야 할까.

제가 오디오북을 별로 많이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첫 여름, 완주는 오디오북 중에서도 거의 극상의 퀄리티라고 봅니다.

종이책 자체를 보면 대본과 소설을 왔다 갔다 하는 구성입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었을 때 놓치기 쉬운 대사들을 천천히, 그리고 담백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https://youtu.be/xDkAX62dkgU?si=0-DUF1hUHYelQgQf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 과정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존재했습니다.

본 오디오북은 윌라 플랫폼 독점 콘텐츠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는 못 듣습니다.

발매 초기 한정 수량으로 판매된 NFT 키링을 통해 윌라 회원이 아니더라도 감상이 가능할 수 있긴 했지만, 현재는 해당 키링이 모두 품절된 상태고 재판매 기약이 없는 상태입니다.

결과적으로 실물 도서만 소장하고 있는 독자들은 오디오북을 듣기 위해 윌라에 별도로 가입해야 상황입니다. 물론, 윌라가 본 프로젝트의 제작을 지원했기 때문에 독점 운영 방식은 당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중요한 정보가 실물 도서 내에는 명확하게 안내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놓고 표지에 오디오북, 출연 배우들의 정보가 명확히 표기되어 있지만, 이것을 윌라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교보문고나 알라딘, 예스24 같은 인터넷 서점 상세 페이지에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렇듯 종이책을 구매한 독자에게 오디오북을 어디서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이는 단순히 책을 구매하면 오디오북도 따라오는 것으로 기대했던 일반 독자에게는 되려,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CD가 수록되어 있다던가, 혹은 다운로드를 받거나, 큐알코드를 통해 특정 링크로 접속해서 들을 수 있는 루트가 있는 줄 알았네요)

만약에 책에 오디오북은 윌라 독점이라는 정보가 명확히 기재되었을 경우, 책 판매량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지만... 저같은 일부 소비자 입장에서는 콘텐츠 이용에 대한 핵심 정보가 사전에 제공되지 않은 점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네요.

기존의 도서와는 차별성을 두기 위해 듣는 소설을 기획했지만, 어떻게 보면 차별성이 너무 강해 유통 방식과 접근성 안내에서 좀 더 세심한 배려가 있었어야 하지 않나,

제가 책이란 물성에 아직도 집착하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첫 여름, 완주에서 종이책과 오디오북의 관계 중간에 윌라가 끼어있는 형태가 영 못 마땅하네요. 이럴거면 종이책 자체를 윌라를 통해서만 유통하지, 아니면 NFT키링이 아닌 종이책을 한정 판매하던가.

뭔가 둘 중에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괜히 반쪽만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요.

저는 그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첫 여름, 완주 오디오북을 유지하려면 윌라에 매달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죠. 지금은 이벤트 중인지 가입하고 2주간은 무료 사용할 수 있고, 이후부터는 할인가인 4,900원 씩 나갑니다. 원래 9,900원이죠. 서울국제도서전 윌라 부스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에게는 한달간 무료 이용권을 줬다더군요. 소장하고 싶게 만들었지만 구매가 아닌 구독을 해야하는 세태라니... 누군가는 넷플릭스 같은 OTT 오리지널 컨텐츠를 생각하면 된다고 할겁니다. 그렇다면 <첫 여름, 완주>도 윌라 오리지널이라고 처음부터 홍보를 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https://youtu.be/oENeZuZUggI?si=8Fuh7iIyTtPWvMAx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아무튼 결론적으로

<첫 여름, 완주>는 단순히 잘 만든 오디오북을 넘어, 문학이 청각적 서사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봅니다.

정서적으로 깊은 울림을 주는 스토리, 섬세한 문체, 진정성 있는 기획 의도, 그리고 높은 수준의 제작 퀄리티까지, 그 어느 하나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컨텐츠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접근성과 안내 측면에서도 더욱 촘촘한 설계가 더해지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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