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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min Kim Oct 10. 2015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 / 감독 : 로버트 저메키스 / 출연 : 톰 행크스 외





디지털이란 게 보편적인 요소로 일상에 스며들고, 기존에 있던 것들에 디지털-조금 더 정확히는 인터넷-을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영화라는 단방향 매체를 양방향으로 전환해서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영화의 내용이 다르게 전개되게 하는 시도였다. 이런 시도 끝에 나온 영화가 있었으며, 극장에서의 상영은 실패했지만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본인도 그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벅스에서 상영했었고, 허준호 씨가 주연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라는 문화 예술은 감독과 작가의 사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단방향 예술이다. 다만, 영화가 상영되고 대중들에게 전달되면 대중들은 감독과 작가의 사상에 동조하느냐 반대하느냐를 가지고 그들(대중)의 사상을 이야기하며 토론하거나 SNS에 개진함으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양방향이 성립하곤 한다. 흔히 말하는 피드백의 개념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독특하다. “내 생각엔 이런 것 같아.” 내지는 “내 사상은 이런 거야.” 의 이야기로 끝나는 영화가 많고 “자 너희도 한번 생각해봐”라고 생각할 여지를 주는 영화가 있는 반면, 이 영화는 “나는 너희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라고 이야기한다. 양방향이 될 수 없지만 양방향 소통을 원하는 듯 보인다.

영화는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깃털을 따라시점이 이동하면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의 앞에 떨어진다. ‘약간 모자라지만 착한’ 포레스트는 그 깃털이 떨어진 이후부터 그가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가 뛰기 시작한 이유부터 그가 참여한 마라톤에서 얼굴을 닦고 난 수건에서 스마일 심벌이 나왔다는 약간은 허무맹랑한 주장까지. 그의 인생 이야기는 대상을 불문하고 계속해서 전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 깃털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 깃털은 우리를 향해 날아온다. 마치 계주에서 주자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하는 ‘바통’과 같은 역할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의 감독인 로버트 저메키스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아니 듣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는 너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라는 이야기를 전해줌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지나온 삶을 돌이키고 추억하게 된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나에게 늘 새로운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를 깨닫게 만든다. 그와 같이 나는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고, 깨닫지 못한 무언가를 깨닫길 바란다. 나와 공감하길 원한다.

나는 이 영화의 메시지처럼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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